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을 그린 화가[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김민 기자

입력 2021-12-18 12:00 수정 2021-12-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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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의사와 함께 있는 자화상’

2021년도 어느새 보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사람들과 접촉이 줄어들면서, 각자가 스스로를 대면하는 개인적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그림이 있는 하루’에서도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마주한 작품이 저에게도, 또 독자 여러분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소개할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그런 점에서 선구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꼭 이야기 하고 싶었던, 개인적으로도 좋아하지만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가죠. 우선 그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의사에게 선물한 그림






이 그림은 고야가 74세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의사와 함께 있는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보면, 침대 시트를 부여잡고 넋이 나간 듯 겨우 앉아 있는 오른쪽 남자가 고야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뒤에서 받치고 있는 사람이 의사, 으제니오 가르시아 아리에타입니다.


그림이 그려졌을 때 상황을 아래쪽 글귀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스페인어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고야가 73세인 1819년 말 극심하고 위험한 병치레를 할 때 연민과 보살핌으로 생명을 구해준 그의 친구 아리에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1820년 그리다.’


즉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 아리에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고 쓴 것입니다.


생애 말기 고야는 여러 가지 질환을 앓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으나 1792년 급격한 건강 악화로 현기증, 섬망, 구토, 복통을 앓고 1793년에는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 다시 한 번 병에 걸리고 맙니다. 이 때 고야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으나, 아리에타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고 8년을 더 살았습니다.


즉 이 그림은 고야가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고야와 아리에타를 둘러싼 의문의 인물들입니다.



○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






밝게 그려진 고야와 아리에타에서 뒤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둠 속에 인물 3명이 눈에 보입니다. 가장 왼쪽의 인물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인물의 얼굴은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습니다. 특히 오른쪽 인물은 어렴풋이 고야를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고 검게 패여 있는 듯한 모습이 해골을 연상케도 합니다.


이 인물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가장 왼쪽 인물은 아리에타의 치료를 돕는 사람, 혹은 고야가 사망할 경우 기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제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야의 작품 세계에 비추어보면 이들 인물은 단순히 주변 사람이 아니라 그가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과 공포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은 고야의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일시적인 기분·1793~1799)에 수록된 것인데요. 고개를 파묻고 잠든 사람의 뒤로 야생 동물들이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통해 이성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무의식을 표현한 역사적인 작품입니다. 마치 우리가 악몽을 꿀 때 일어나는 광경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 같지요.


위 판화처럼 고야가 죽을 고비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때도, 의식이 희미한 순간 드러나는 온갖 환영과 환청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심한 감기 몸살을 앓거나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가위에 눌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 마음을 그린다는 것


고야는 이렇게 언어나 논리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과 동물적 속성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것이 1899년이니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보다 더 빠르게 인간의 무의식을 자각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각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를 쓴 흔적을 작품으로 만날 수 있지요.


‘의사와 함께 있는 자화상’의 독특한 또 다른 한 가지 특성은 바로 그림 아래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러한 형태의 그림이 종교화에 흔히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아리에타가 고야에게 약이 든 잔을 건네는 모습은 예수가 ‘고통의 잔’을 받는 ‘겟세마네 동산’ 장면과도 비슷합니다.





고야가 정말로 ‘겟세마네’ 테마를 차용한 것이라면, 스스로를 예수와 같은 처지에서 그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보통 종교화에서 예수나 성인의 주변 인물로 주문자의 얼굴을 그리기도 하는데, 화가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고야는 예수가 겪은 고통에서 ‘성스러운 예수’를 본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예수가 겪었던 감정에 집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화상에도 그러한 도상을 차용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여기서 고야가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쿠르베가 평범한 사람의 장례식을 종교화나 역사화에 버금가는 사이즈로 그리고, 인상주의 회화가 등장하면서 근대 회화의 막이 올랐는데요. 이 때 중요한 것은 바로 종교나 역사적 인물만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금기가 깨졌다는 사실입니다. 고야는 삶을 직관하는 예민한 감각으로 이러한 움직임의 포문을 연 것이지요.


고야의 ‘의사와 함께 있는 자화상’이 나온 70년 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자신의 머리 위에 성스러운 후광(halo)을 두른 자화상을 그리게 됩니다.





고야의 예민하고 정직한 자화상을 보며,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위대한 일들의 시작은 사실상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느끼는 기쁨, 행복, 공포,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수백 년 전 과거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자각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듯 말입니다. 오늘 이 그림을 감상하며 나의 수많은 감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함께 보고 싶은 ‘그 하루’ 댓글
오늘부터 ‘그림이 있는 하루’ 독자 여러분의 댓글을 함께 소개합니다. 저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작품, 작가와의 만남을 넘어 ‘나’를 새롭게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독자 분들이 남겨주신 다양한 댓글을 즐겁게 읽다보니 혼자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주 진솔한 감상이 담긴 댓글 하나를 공유하겠습니다.




지치긴 했어도 평온해 보임. 얼굴을 감싼 차갑고 날카로운 터치는 주변의 상황, 병자를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고 환자는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평온함이 느껴진다. (kopi**** 님)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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