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등 떠민 원격의료… 의료계도 ‘대세’ 인정속 ‘보상’에 촉각[박성민의 더블케어]

박성민 기자

입력 2021-12-18 03:00 수정 2021-12-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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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 타는 원격의료
팬데믹 이후 비대면 진료 급증… ‘편리함’ 겪어본 환자들 도입 찬성
의료진들도 무작정 반대 않지만, 현 의료체계내 이식엔 거부감
의료계 원하는 방안 반영에 주력… 긴 진료시간-낮은 수가 걸림돌


13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버추얼케어센터에서 서용성 센터장(심장내과 전문의)이 화상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고양=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환자분, 요즘 숨이 차거나 어지럽지는 않으세요?”(서용성 명지병원 버추얼케어센터장)

“잘 모르겠네요.”(환자 A 씨)

“아드님, 어머니 발이 부었는지 볼 수 있게 카메라를 내려주세요. 이제 손으로 발을 한번 눌러 보세요.”(서 센터장)

서 센터장은 2년째 A 씨를 진료실에서 만나지 못했다. A 씨는 90대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병원 방문을 꺼린다. 약이 떨어지면 아들이 처방을 받아 갔다.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A 씨는 심장에 스텐트를 넣은 상태다. 집에서 측정할 수 있는 혈압, 맥박은 아들이 서 센터장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직접 문진을 못 하니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명지병원 버추얼케어센터가 문을 열면서 환자와 훨씬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A 씨 아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어머니를 화상에 띄우면 서 센터장이 문진하고 처방한다. 처방전은 A 씨 집 앞 약국으로 보낸다. 서 센터장은 “보호자를 통해서 듣는 것보다 환자에게 직접 물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대면 진료의 공백을 메우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기존 외래 환자 외에도 재외국민,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 등을 비대면으로 진료한다.

○ 코로나19 이후 원격진료 328만 건

국내에서는 격·오지(隔·奧地) 군부대, 원양 선박, 재택의료시범사업 등에 한해서만 의사가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해 왔다. 이 같은 원격의료의 빗장을 연 건 코로나19다. 지난해 2월 전화상담과 처방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그해 12월 ‘심각 단계 이상의 감염병 위기 경보가 발령됐을 때 비대면 진단, 상담, 처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달 6일 현재 누적 상담은 328만3790건, 청구된 진료비는 약 511억 원이다.

이 숫자들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원격의료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쪽은 “전체 처방 건수의 1%도 안 된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의료계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올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진 77.1%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라진 이후 전화 상담과 처방을 현행처럼 유지하는 것에 반대했다. 같은 조사에서 비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의료진의 59.8%는 ‘현재의 비대면 진료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환자 안전성 확보에 대한 의료적 판단이 어려워서’(83.5%)였다. 원격의료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300만 건이라는 숫자가 원격의료 정착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대면 진료의 편리함을 이미 맛봤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얘기다. 올 1월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 보고서에서 국민 66.1%가 의사와 환자 원격진료에 찬성했다. 29.4%는 의견을 유보했고, ‘반대’는 4.5%에 그쳤다.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 누적 이용자는 서비스 출시 약 1년 만에 70만 명을 넘었다. 주부 장모 씨(38)는 “장염 증세가 있어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했다”며 “전화 상담 후 약도 집으로 배달돼 병원에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세인 건 알지만, 끌려가지는 않겠다”

원격의료 도입 반대 측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은 발달하고 비대면 진료 수요도 커지는데 원격의료 도입을 무작정 막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원격의료를 현 의료체계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반대다.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원격의료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의사들이 플랫폼 사업자의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얘기를 꺼내기 힘들었던 의협 안에서도 “공론화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올 5월 의협 대의원회의에 원격의료가 안건으로 올랐고, 7월에는 서울시의사회 산하에 국내 현실에 맞는 원격의료 제도를 논의하기 위해 원격의료연구회를 만들었다. 정부 주도의 원격의료 도입에 마냥 끌려 다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김성근 원격의료연구회장(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은 “대다수 의사도 결국 원격의료는 실현될 것으로 본다. 다만 60% 이상은 ‘나는 안 하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환자의 편의성, 산업적 육성 필요성만 앞세운 원격의료 도입 논의에 맞서 의료계가 원하는 원격의료 방안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의료계 설득할 ‘당근’ 필요




코로나19 재택 치료 환자가 3만 명에 육박하면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은 더 부각되고 있다. 원격의료 경험이 더 일찍 쌓였더라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재택치료가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 정세영 분당서울대병원 디지털헬스케어 연구사업부 교수는 “팬데믹처럼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상황은 언제든 또 닥칠 수 있다. 원격의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선 원격의료 도입의 열쇠는 의료진에게 얼마나 보상을 해주느냐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원격의료는 환자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그 과정을 중계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 손익계산은 좀 더 복잡하다.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수가(酬價)다. 의원급 기준 외래환자 진찰료는 초진 1만6140원, 재진 1만1540원이다. 전화 상담은 여기에 30%를 가산해 준다. 그런데 원격의료는 대면 진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제 시간에 진료가 시작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따라서 같은 시간에 볼 수 있는 환자는 더 적다. 서 센터장은 “외래 환자 10명을 볼 시간에 비대면 진료는 환자 2, 3명이 가능하다. 현재 수가로는 참여 유인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때문에 대형 병원 쏠림 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 2건도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참여 병원을 의원급으로 한정했다. 다만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법안에서는 병원급 기관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예외 조항을 뒀다.

하지만 참여 기관을 의원급으로 한정한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원의(開院醫)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의원급에서 시작할 순 있어도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은 환자 요구가 커지면 대상 확대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차라리 의사 1인당 비대면 진료 횟수를 제한하거나, 의료기관 규모마다 차등화하는 것이 환자 쏠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할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장벽이다. 김 교수는 “고혈압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하면서 혹시 진행 중인 합병증을 놓치지는 않나 하는 두려움을 늘 갖게 된다”며 “면책 사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 원격의료 시범사업 이후 들어선 모든 정부는 원격의료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의료계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저(低)수가 틀에 가두지 말라. 의료체계 개선도 함께 논의하자’는 의료계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원격의료 혜택이 의료 사각지대 환자들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서 센터장은 “홀몸노인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으려면 관련 기기와 인력을 어떻게 지원할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 변화에 맞서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료계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원격의료 도입은 (안 하겠다고)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능한 영역부터 도입해 보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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