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심장이식 대기, 희망 잃어가”…코로나 이후 장기기증 줄어

김윤이 기자

입력 2021-12-17 03:00 수정 2021-12-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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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사회적 관심 크게 줄고 병원 면회제한으로 상담도 어려워
올해 누적 장기기증자 419명 그쳐… 2018년 이후 최저치 기록할 듯
이식대기자는 계속 늘어 4만명 육박, 전문가 “기증 활성화 방안 절실”



“병원에 입원했을 땐 이식 대기 시간을 3∼6개월로 안내받았는데 벌써 8개월이 넘어가고 있네요. 다른 이식 대기자들도 점점 대기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최모 씨(57)는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 중 한 명이다. ‘확장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에 이상이 생겨 기능이 저하되는 병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혈액 공급이 안 돼 숨이 차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최 씨는 “장기 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입원 8개월이 되도록 기증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최 씨의 팔에는 심장을 강제로 뛰게 해주는 주사가 꽂혀 있다. 그는 간이침대에서 지내며 24시간 간호를 해주던 아내를 몇 달 전 집으로 돌려보냈다. 최 씨는 “대기가 길어지며 경제적인 부담도 커지고, 나의 생활도 무너졌지만 가족들에게 특히 미안하다”고 했다. 장기 이식 대기자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기 시간에 지쳐 희망을 잃어간다는 것이라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최 씨처럼 장기 기증을 받지 못하는 대기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타인에게 새 삶을 선물하는 장기 기증자 역시 줄어들고 있다. 16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국내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2016년 573명에서 지난해 478명으로 감소했다. 올해 누적 장기 기증자(12월 16일 기준)는 419명에 그쳐 남은 보름간 크게 늘지 않는 이상 201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장기 이식 대기자 수가 2016년 2만4611명에서 올해 3만8264명(9월 기준)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올 들어 1∼9월까지만 대기자 수가 약 2500명 늘었다.

장기조직기증원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의료기관의 기증 관련 관심 저하가 장기 기증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각 병원은 기증원에 매월 뇌사 추정자를 통보해주는데, 전국 병원의 월평균 통보 건수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07건에서 지난해 181건으로 줄었고, 올 들어 176건(10월 기준)으로 감소했다. 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국가적 재난 상황이 지속되면서 병원의 뇌사추정자 통보가 줄어드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병원의 면회 제한으로 병원에서 뇌사 추정 환자들의 보호자들을 만나 장기 기증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코디네이터들의 활동에 제약이 생긴 것도 장기 기증 감소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해 기준 전국 주요 병원 92곳 중 65곳(70%)에서 보호자의 환자 면회를 전면 금지했고, 25곳(27%)은 보호자 면회시간을 축소하거나 인원을 제한했다.

영남 지역에서 근무하는 최윤정 코디네이터는 “보호자들을 만나지 못해 전화로만 장기 기증 관련 설명을 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시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 코디네이터들의 방문도 제한해 과거에는 대형 병원 기준 일주일에 4, 5차례 방문했던 것이 코로나19 이후에는 1, 2차례로 줄었다”고 했다. 의료진에게도 뇌사 추정자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려워졌다고 한다.

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매년 장기 기증자 수와 이식 대기자 수의 편차가 커지고 있어 일반인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코로나로 인해 국민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실감하게 된 만큼,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기증 희망 등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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