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마력이 달리 보인다

김태언 기자

입력 2021-12-14 03:00 수정 2021-12-14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서울 DDP ‘살바도르 달리展’ 유화-삽화 등 140여점 선보여
깔끔한 채색… 완벽한 원근법…
환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현실과 꿈의 경계 파괴 시도


살바도르 달리 ⓒGerard Thomas d’Hoste / Fundacio Gala-Salvador Dali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문제적 아티스트다. 생전 “세상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라며 거침없는 행보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고, 실제 매우 유명했기에 사후에도 위작 시도가 많았다. 2004년 핀란드 헬싱키박물관에서 달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최한 기념전시는 작품 대부분이 모조품으로 확인돼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는 국내 처음으로 살바도르 달리 재단과 협업해 유화, 삽화, 영화, 애니메이션 1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달리 작품의 주요 소장처인 스페인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미국 플로리다 미술관,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소장품으로 구성된다. 달리 재단의 몬트세 오거, 후안 세비아노 디렉터는 “1000점의 유화로 구성된 달리의 회화 전작 도록은 재단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조형 작품도 기록하고 있다. 우선 그래픽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디지털 목록을 발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1947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작품을 보면 의외의 면에 놀라게 된다. 깔끔한 채색과 정밀한 소묘, 완벽한 원근법 때문이다. 달리는 비사실적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달리는 이 화법을 ‘편집광적 비판’이라 이름 붙였다. 환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그래서 달리 그림에는 익숙함과 생경함이 공존한다. ‘유령 마차’(1933년)는 달리의 고향 스페인의 엠포르다 대지가 배경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은 마차 왼쪽에 어렴풋이 그려진 해골, 건물처럼 보이는 마차 운전자 등 수수께끼 같은 사물들로 인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1919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의외의 장소에 놓인 왜곡된 사물. 달리 그림의 특징이다. 그는 개미, 목발, 줄넘기하는 여자, 신발, 사이프러스 나무 등을 반복해 사용했다. 달리는 죽은 박쥐 위를 기어 다니던 개미 떼를 보곤 “시간을 먹는 위대한 존재”라 생각했다. 개미에게서 죽음과 부패를 본 달리는 개미핥기를 키울 정도로 개미를 무서워했다. 그는 목발에서 “엄청난 권력과 엄숙함”을, 줄넘기하는 여자에게서 “어린 시절 순수함”을 느꼈다. 학교 창밖으로 종일 바라보던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음과 고독을 의미했다. 어린 시절 나폴레옹이 되길 꿈꿨던 달리의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1945년)에서는 목발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 폭탄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1947년)에서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다.

갈라의 발, 입체적 작품(1974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달리의 내면은 불안감과 호기심으로 차 있었다. “이 전시는 달리 머릿속으로의 여행”이라는 설명처럼 전시장 곳곳에는 달리에게 자극이 된 대상을 볼 수 있다. 달리의 뮤즈인 아내 갈라(1894∼1982)와 밀레의 ‘만종’을 재해석해 그린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달리는 ‘만종’을 두고 “몇 년이나 나를 쫓아다니며 모호한 위기감을 유발시켰다”고 했다. 감자 바구니가 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만종’을 X선 촬영한 결과 감자 바구니 아래에 관으로 추정되는 작은 나무 상자 밑그림이 발견됐다고 한다. 모래 사막 속 아내와 ‘만종’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그려넣은 ‘슈거 스핑크스’(1933년)는 ‘만종’을 새롭게 해석해 그린 작품 중 하나다. ‘갈라의 발, 입체적 작품’(1974년)에서도 보듯 갈라는 수많은 작품 속 모델이었다. 달리는 작품에 사인할 때 갈라의 공헌을 표하며 ‘갈라 살바도르 달리’라고 남기기도 했다.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1945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사망 1년 전인 1988년, 병원에 실려 간 달리가 처음 요청한 건 TV였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뉴스를 보겠다는 것.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던 달리.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영화·연극 연출가로 폭넓게 활동했다. 도발적인 언행은 시대를 앞선 그의 예술이 있기에 또 하나의 마력이 된다. 내년 3월 20일까지. 2만 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