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 찾아온 ‘문제적 아티스트’ 달리의 ‘진짜’ 작품…익숙함·생경함 공존

김태언 기자

입력 2021-12-13 14:29 수정 2021-12-1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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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분명 문제적 아티스트다. 생전 “세상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라며 거침없는 행보로 대중을 들썩이게 했고, 실제로 매우 유명했기에 사후에도 위작 시도와 논란이 많았다. 실제 2004년에는 핀란드 헬싱키박물관에서 달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전시를 열었는데, 대부분 모조품이라 중단된 바 있다.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1947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 중인 ‘살바도르 달리: Imagination and Reality’가 유의미한 건 앞선 사건들 때문이다. 이 전시는 국내 최초로 살바도르 달리 재단과 협업해 유화, 삽화, 영화, 애니메이션 140여 점의 원작이 시기별로 선보여진다. 달리 작품의 주요 소장처인 스페인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미국 플로리다 미술관,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소장품으로 구성된다. 달리 재단의 몬트세 오거, 후안 세비아노 디렉터는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연장선상에서 현재 1000점의 유화가 포함된 달리의 회화 전작 도록은 재단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돼있다”며 “회화뿐 아니라 3차원 조형작품을 정리해 기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며, 그보다 앞서 달리의 그래픽 작품들을 모아볼 수 있는 디지털 목록도 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갈라의 발, 입체적 작품(1974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작품을 보다가 놀라는 지점은 깔끔한 채색과 정밀한 소묘, 완벽한 원근법이다. 달리의 작품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건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달리는 비사실적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달리는 이 화법을 ‘편집광적 비판’이라 이름 붙였다.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달리 그림에는 익숙함과 생경함이 공존한다. 출품작 ‘유령 마차’(1933년)는 달리의 고향 스페인의 엠포르다 대지를 배경으로 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은 마차 좌측에 어렴풋이 그려진 해골, 건물처럼 보이는 마차 운전자 등 수수께끼 같은 사물들로 인해 긴장감을 띠게 된다.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1945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의외의 장소에 놓인 왜곡된 사물. 달리 그림의 상징적인 사물은 잘 알려진 ‘녹아내린 시계’만은 아니다. 그는 개미, 목발, 줄넘기하는 여자, 신발, 사이프러스 나무 등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달리는 죽은 박쥐 위를 기어 다니던 개미떼를 보곤 “시간을 먹는 위대한 존재”라 생각했다. 개미에게서 죽음과 부패를 본 달리는 개미핥기를 키울 정도로 개미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는 목발에서 “엄청난 권력과 엄숙함”을, 줄넘기하는 여자에게서 “어린시절 순수함”을 느꼈다. 에로티시즘의 상징으로 신발을 사용했으며, 학교 창밖으로 종일 바라보던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음과 고독을 의미했다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1919년),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관람객이 작품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과 호기심은 달리 본인의 내면이기도 했다. “이 전시는 달리 머릿속으로의 여행”이라는 재단 측 설명처럼 곳곳에는 달리에게 자극이 된 대상들이 소개된다. 달리의 뮤즈인 아내 갈라(1894~1982)와 밀레의 ‘만종’이 대표적이다. 달리는 만종을 두고 “몇 년이나 나를 쫓아다니며 모호한 위기감을 유발시켰다”고 했다. 감자바구니가 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달리는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는 이후 만종을 재해석한 그림들을 제작하는데 ‘슈거 스핑크스’(1933년)도 그중 하나다. 이는 달리 작품에 갈라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초기작이기도 하다. 달리는 작품에 사인할 때 갈라의 공헌을 표하며 ‘갈라 살바도르 달리’라고 남기기도 했다.

살바도르 달리, ⓒGerard Thomas d’Hoste / Fundacio Gala-Salvador Dali


사망 1년 전인 1988년, 병원에 실려 간 달리가 처음 요청한 것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뉴스를 볼 수 있도록 TV를 갖다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던 달리. 그는 한계를 두지 않고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영화·연극 연출가로서도 광범위하게 활동했다. 오만할 정도로 도발적인 언행은 시대를 앞선 그의 예술이 있기에 또 하나의 마력이 된다. 내년 3월 20일까지.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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