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제철보국’, 포스텍은 ‘교육보국’… 산학연 강조한 ‘철강왕’

장영훈 기자

입력 2021-12-13 03:00 수정 2021-12-13 03:06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박태준 서거 10주기 추모 행사 다채

청암이 1996년 12월 3일 포스텍 개교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미래의 세계적 과학자 탄생을 위해 비워 둔 좌대에 손을 얹고 있다. 포스텍 제공

포스코는 ‘제철보국’, 포스코의 교육기관은 ‘교육보국’.

‘철강왕’ 박태준 전 포스텍 설립 이사장(1927∼2011)의 서거 10주기(12월 13일)를 맞아 그의 리더십과 삶을 돌아보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청암(박 전 이사장의 호)의 창업정신과 포스텍(포항공대), 포스코교육재단의 건학 이념이 ‘국가에 보답한다’는 보국(報國)을 지향했다는 점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 교육자 ‘박태준’의 삶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이달 3일 오후 서울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청암의 서거 10주기 추모 심포지엄 ‘영원한 울림(Spirit for the Future)’을 열었다. 추도사는 청암의 철학과 정신을 연구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송 명예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청암의 리더십을 ‘태준이즘’으로 표현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포스코와 포스텍을 설립한 강력한 추진력,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을 물리치고 공익을 추구한 정신이 태준이즘의 핵심이다. 청암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건설 직후 포스텍 설립을 밝히면서 “제철보국으로 쌓은 실력과 결실을 바탕삼아 교육보국을 실천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다.

3일 서울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청암 박태준 서거 10주기 추모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영원한 울림’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포스텍 제공


청암은 1971년 유치원을 시작으로 포항과 광양에 14개 학교를 잇달아 설립하고 국내 최고 수준의 명문 사학으로 발전시키면서 ‘교육의 지방화 시대’를 열었다. 포스코가 설립 초기 직원 자녀들을 위한 교육시설의 완비는 우수 인재 확보와 직결된다는 판단에서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 결실이다.

청암은 1980년 광양제철소 건설을 계획하면서 대학 설립으로 눈을 돌렸다. 철강산업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획기적인 인재 확보 방안의 하나로 포항에 세계적인 대학을 설립해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시작한 것이다. 포스코의 미래뿐만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의 연구 개발을 통해 국가경쟁력도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미국 사립대의 사례를 살폈다. 미국 기업가들의 대학 설립이 곧 사회 환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참고했다. 청암은 “공인인 사업가가 사회에서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포스코의 이익을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엑손연구소와 활발히 교류하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같은 연구중심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청암은 산(포스코)·학(포스텍)·연(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협동 모델을 대학에 융합하는 것을 구상했다. 대학원을 중심으로 첨단 과학시설을 갖추고 교수들의 연구시간을 늘려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에는 이례적인 형태의 대학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리더는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며 “때를 잘 만나 출발한 포스텍은 이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서 항상 첫 번째를 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미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도 “청암이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설립하고 3, 4세대 가속기를 추진한 것은 국내 대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기초과학 업그레이드 밑거름
청암은 포스텍 투자를 결정하면서 “조상의 핏값으로 세운 포스코의 아들이 포스텍이며 포스텍이 한국 이공계 분야를 이끌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한다. 그의 교육철학과 기초과학연구 가치관이 현재의 포스텍을 만들어냈고 한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김 총장은 “청암이 포스텍을 설립하면서 목표로 했던 것은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는다. 설립 이념에서 ‘국가’를 빼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포스텍이 지식 전달과 연구에 치중하지 않고 전인교육, 사회봉사를 강조하는 것도 청암의 설립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문 원장은 “국가 과학기술 기반 확충이 포스텍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크게 늘었고 과학 인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원장은 “청암은 1971년에 제철장학회, 1985∼1994년 해외유학장학사업을 운영했고 1986년에는 마침내 포스텍을 설립했다. 평소 교육에 관심이 높았던 청암은 인재 육성이 한국의 미래 산업을 위한 투자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청암의 교육 리더십을 연구한 이상오 전 연세대 교수는 “청암이 강조했던 산학연 협력 인적자원개발 시스템은 포항과 광양을 교육중심도시로 성장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 발전을 생각하는 그의 교육철학을 지금 시대에 맞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암을 기리는 행사는 계속 이어진다. 서울 포스코센터에 있는 포스코미술관은 23일까지 10주기 추모 사진전을 연다.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과 초대 사장 취임, 1기 설비 종합 착공 등 작품 8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추모 영상관도 운영한다. 7일에는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박태준 명예회장 10주기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