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와 아트 경계 허문 ‘침묵의 외침’

전승훈 기자

입력 2021-12-01 03:00 수정 2021-12-01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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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최병훈 개인전
자연 형상 닮은 작품 30여점 소개


최병훈 작가의 ‘아트벤치’. 가나아트센터 제공
“공예와 아트에 대한 구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쓸 수 있는 가구이면서도 그 자체가 조각처럼, 예술작품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의 선구자이자 현대 디자인의 선두인 최병훈 홍익대 명예교수(69·사진) 가 돌과 나무가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A Silent Message’는 정통 미술관에서 열리는 공예작가 초대전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예술적인 조각을 방불케 하는 ‘아트 퍼니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미국),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독일), M+ 미술관(홍콩)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개관한 미국 휴스턴 미술관 신관에는 ‘선비의 길(Scholar’s Way)’이라는 조각 작품이 영구 설치되어 화제를 모았다. 휴스턴 미술관 측에서 최병훈과 세계적인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를 포함한 거장 8명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해 성사된 것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 작가는 대량 생산품과 전통 공예품만이 가구로 여겨지던 1980년대부터 가구 디자인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구인 동시에 자연의 형상을 간직한 조각이자 설치 예술작품을 보여준다. 단단함과 유연함, 거칢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가구와 콘솔, 벤치 등 대표작 30여 점을 소개한다.

‘사일런트 메시지’라는 제목처럼 그의 가구들은 화려한 장식이 없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과 나무라는 자연의 재료를 사색하며 작품의 본질까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나무책장에는 현무암, 자연석, 수석 등을 수납공간 중간 중간 삽입하거나 아랫부분 지지대로 활용해 안정감을 전달한다.


특히 거대한 인도네시아산 현무암으로 만든 ‘아트벤치’는 인상적이다. 2008년에는 덕수궁 돌담길에 설치되었으며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도 설치됐다. 마치 폐사지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황량한 느낌이지만 도심의 최첨단 빌딩의 로비에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1979년도에 이탈리아 로마의 폐허가 된 고대도시 ‘포로 로마노’에 갔어요. 커다란 돌기둥이 폐허처럼 남아 있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국내에서도 폐사지를 무척 많이 찾아갔습니다. 원주의 거돈사지 폐사지에 불상을 받쳤던 거대한 돌덩이인 ‘불대좌’가 있는데 장관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세월을 버텨낸 돌입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제 몸에 새겨져 있다가 어느 날 작업 중에 표현돼 나오는 것이죠.”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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