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선 못 배울 소중한 가치들 푸른 자연 속에서 스스로 깨친다

권혁일 기자

입력 2021-11-25 03:00 수정 2021-1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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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공사 농촌유학센터
2010년부터 농촌유학 지원 나서… 전국 29개 센터 통해 320명 유학
6개월 이상 도시 떠나 농촌 생활… 마을축제 등 공동체 활동들 참여
도시 어린이에겐 전인교육 제공… 고령화 겪는 농촌마을엔 활기를



충북 단양 한드미마을 아이들은 방과 후에 친구들과 마음껏 축구를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배드민턴을 치고, 드럼과 기타를 배운다. 흙과 돌을 재료로 삼아 소꿉놀이를 하고, 나물을 캐러 나서기도 한다. 그렇게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익히고 자연을 몸소 체험하며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시간을 보낸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2, 3개의 학원을 돌며 하루를 보내는 도시의 초중학생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흔히 ‘유학’이라 하면 해외로 떠나는 경우나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를 떠올리지만 최근에는 이와는 반대로 농촌으로 유학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농촌유학이란 도시 아이들이 6개월 이상 부모 곁을 떠나 농촌의 농가나 유학센터에서 생활하며 선생님·친구들과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작은 농촌학교에 다니는 것을 말한다. 농촌공동체와 함께 살며 농촌의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스스로 생활하는 습관을 기르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을 배우는 전인교육 프로그램이다.

한드미 농촌유학센터 정문찬 대표는 어떻게 하면 점차 고령화되는 마을을 살리고 가곡초 대곡분교를 폐교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한국농어촌공사가 주관하는 ‘1인1촌 전문가와의 만남’을 통해 농촌유학을 처음 접했다. 그는 일본 농촌에서 산촌유학을 통해 마을이 살아난 사례가 있다는 것을 듣고 농촌유학을 마을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심한 뒤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농촌유학센터를 설립했다.

정 대표는 “농촌유학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마을을 살리고자 함께 노력한 주민들의 도움과 노력이 없었으면 50여 명의 어린이·청소년이 함께 생활하는 지금의 농촌유학센터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농림축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 농어촌공사의 지원도 농촌유학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어촌공사는 도시 학생들의 농촌 생활·학교 체험을 통한 도농 교류 확대 및 농촌 지역 교육공동체 형성 등 농촌 활력 제고를 위해 2010년부터 ‘농촌유학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농촌유학센터는 농촌마을과 학교를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종사자 인건비 지급, 교육기자재 구입 및 시설 개보수 등 농촌유학생에 대한 교육과 돌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실시한다.

농식품부와 농어촌공사는 농촌유학 기반을 구축하고 질을 올리기 위해 표준운영 매뉴얼을 보급하고 농촌유학센터 평가제도를 도입했다. 또 농촌유학 확산을 위한 TV 다큐멘터리 제작·방영, 웹드라마 제작·송출, 농촌유학센터 홍보영상 및 홍보패널 제작 등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농촌유학을 바르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전국 29개 농촌유학센터에서 320명의 초중학생이 농촌유학 지원사업을 통해 농촌유학에 참여하고 있다. 또 서울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의 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165명의 서울 학생이 전남지역에서 농촌유학을 진행 중이다.

최근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농촌에 아이들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마을에 생기가 돈다. 농촌유학센터에서는 마을축제, 경로잔치, 도시락 나눔 등 어린이·청소년이 농촌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진행하면서 활력이 넘치는 농촌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울산 울주 소호산촌유학센터의 방과후 학교 연계 숲학교 운영, 경기 여주 밀머리농촌유학센터의 마을축제 개최, 한드미 농촌유학센터의 가을 한마당, 강원 춘천 별빛산골교육센터의 별빛음악회 등은 농촌유학과 지역주민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프로그램으로 농촌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또 도시 학부모의 농촌방문, 농촌유학 체험캠프, 농촌유학을 경험한 학부모의 귀농귀촌, 농촌유학 종사자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농촌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한드미 농촌유학센터에서 농촌유학을 경험한 학부모 중 다섯 가구가 귀농귀촌을 했다. 자녀들의 농촌유학 기간에 단양에 함께 거주하는 학부모도 네 가구에 이른다. 또한 농촌유학센터를 졸업한 유학생이 성인이 된 뒤 다시 한드미마을을 찾아와 농촌유학센터 활동가로 취업하는 사례도 있다.

농촌유학은 작은 농촌학교의 통폐합을 방지하고 복식학급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면서 농촌 공교육의 붕괴를 막는 역할도 한다. 춘천 별빛산골유학센터와 연계된 송화초등학교의 경우 농촌유학생이 2010년 4명에서 2020년 12명으로 늘면서 초등학교가 유지됨에 따라 같은 기간 지역학생도 15명에서 28명으로 늘었다.

농촌유학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관계자는 “농촌유학은 바쁜 도시생활과 치열한 경쟁에 지친 도시 아이들을 농촌의 따뜻한 품으로 보살피며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침체된 농촌에 아이들의 웃음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교육 프로그램”이라며 “아이들을 키우고 농촌을 살리는 데 농촌유학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농촌유학센터와 학부모, 농촌유학생의 의견을 경청해 농촌유학이 더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권혁일 기자 moragoheya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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