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불러온 ‘마음의 병’… 의료취약계층에 사회적 지원 절실

홍은심 기자

입력 2021-11-24 03:00 수정 2021-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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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한국보건의료연구원 ‘감염병…’ 심포지엄 개최
유행 전보다 우울지수 2.7배 ↑… 20대-여성-저소득층 특히 높아
조현병 환자관리에도 ‘빨간불’… 일반인 대비 코로나 사망률 3배
임종 못지킨 말기 암환자 가족… ‘트라우마성 사별’ 사례도 늘어


자료: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한국인의 정신건강에도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위험도를 나타내는 우울지수가 코로나19 유행 전에 비해 2.7배나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20대 남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우울하고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기적인 전염병 확산으로 많은 이들이 정신건강 위기에 노출된 만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포괄적인 정신건강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1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 첫 발표자로 나선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이 우리 사회에 미친 정신건강 및 사회심리적 영향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2021년 상하반기 두 번에 걸쳐 2164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구 집단별, 시기별 사회심리적 차이를 관찰했다.

조사 결과 우울평균점수(PHQ-9)는 1차 조사에서 6.6점(총점 27점), 2차 조사에서는 6.1점이 나왔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실시된 지역사회 건강조사 결과인 2.3점에 비해 2.7배 늘어난 것이다.

우울위험군(10점 이상)은 1차 조사결과 전체 조사 대상 중 28%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비해 무려 7배나 늘었다. 특히 20대 조사군에서는 우울위험군의 비중이 40.2%를 기록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저소득층이 다른 소득층에 비해 우울위험군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백 교수는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부정적인 심리 반응은 질병 취약이나 세균 혐오가 아닌 경제적 어려움, 미래 불확실성 등에 기인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즉,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이 안정된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계층에게 더 큰 불안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코로나19는 다양한 부문에서 의료보건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완 전남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유행시기의 조현병 환자지원’이란 주제 발표에서 “일반인에 비해 조현병 환자들의 코로나19 사망률이 3배나 높다”며 “코로나 이후 조현병 환자들의 입원이나 외래 방문율이 현저히 감소해 투약과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조현병 치료에서 약물유지가 재발 예방에 가장 중요한 치료법임을 고려하면 비대면 방식을 포함한 연속적인 정신건강 서비스와 응급대응체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산이 2020년 초 만성 정신질환자들이 입원치료 중이던 병원에서 집단발병으로 시작됐고 첫 사망자도 조현병 환자임을 감안하면 일반인에 비해 조현병 환자들이 더욱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상처는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에게도 남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말기 암환자와 가족이 겪는 말기 돌봄 문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김범석 서울대 의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2019년 대비 2020년 응급실에서 사망한 암환자가 두 배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말기 암환자가 사망에 이르러 준비되지 않은 채 다급하게 응급실을 찾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병원에 입원한 암환자 가족들도 면회 제한 등으로 환자의 임종기를 함께 보내지 못하면서 가족 간에 인간적 상처를 남기는 ‘트라우마성 사별’을 경험하는 사례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는 “생애 말기 환자의 존엄성을 위해서는 감염병 유행 등 위기상황에서도 환자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재택의료를 통한 미충족 욕구의 해소 △가족의 독박간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광협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에서 만성질환자와 의료취약계층의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으로도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 정부와 의료계, 소비자, 언론 등 다양한 사회적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에서 관찰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weak link): 사회심리적 영향’을 주제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 심포지엄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취약해진 의료취약계층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대응과 정책마련을 위해 진행됐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에 대비한 ‘감염병 의료기술 근거생성 연구사업’은 2020년부터 2년간 복지부 지원으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단이 주관하는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사업으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을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국내 의료현장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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