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 3인, 전통 회화가 지닌 평면성에 도전장

김태언 기자

입력 2021-11-23 03:00:00 수정 2021-11-23 03:00: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일민미술관 ‘IMA Picks 2021’
형체 일그러진 회화 선보인 이은새… 철판 조각에 작업 ‘리핑’ 눈길
작품의 공간성 고심한 홍승혜… 컴퓨터 픽셀에 눈 돌려 유희 선사
자신의 존재 회화로 탐구한 윤석남 “그림이란 너와 내가 통하는 방법”


예술가, 성우, 관객, 공주, 연인으로 각각 설정된 퍼포머 5명이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홍승혜의 퍼포먼스 작품 ‘연습’(위쪽 사진). 내면의 목소리를 말하는 이 퍼포먼스는 토요일 오후 1∼5시, 시작 시간은 물론이고 러닝 타임도 정하지 않고 게릴라식으로 열린다. 윤석남이 한지에 그린 ‘고카츠 레이코 초상’(아래쪽 왼쪽 사진)의 주인공은 윤석남의 작업 활동을 도운 일본인 큐레이터로 국적을 초월한 연대를 담았다. 이은새가 철 조각을 캔버스 삼아 그린 ‘미니’. 일민미술관 제공

‘여성 작가 3인의 예술 활동.’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IMA Picks 2021’의 주제는 얼핏 진부해 보이지만 의미가 있다. 미술계에서 여전히 여성 서사의 역사는 짧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미술관들은 여성 화가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첫 회고전을 열었고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은 2017년 더 많은 여성 예술가를 조명하겠다고 밝혔다.

‘IMA Picks 2021’은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미술관은 지금 주목할 작가로 세 여성 작가 윤석남(82) 홍승혜(62·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이은새(34)를 꼽았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선임큐레이터는 “세 작가는 회화에 기반을 두면서도 전통 회화가 지닌 평면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시작한 IMA Picks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 3명을 조명하는 전시다. 격년으로 열릴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열리지 못하고 올해 개최됐다.

이은새는 형체가 일그러진 회화를 선보인다. 기존에 작가는 술에 취한 여성 등 여러 모습의 여성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나 역시 여성을 이미지의 소재로 재생산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이번 전시에서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지 않은 추상화를 선보였다.

그가 처음으로 철판 조각에 작업을 한 작품 ‘리핑’ 시리즈(2021년)는 잘려진 쇠의 테두리와 평면 위에 그어진 금이 모두 회화적 선처럼 보인다. 철판의 두툼한 옆면에는 유화 물감을 칠했다. ‘미니’는 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곡선을 그렸고 철판 옆면은 노란색, 파란색으로 채색했다. 작가가 “극단적 그리기”라 표현한 이 시리즈는 조각임에도 회화처럼 보인다.

홍승혜의 작품은 회화라는 걸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서정적인 유화를 그리던 그는 1997년 백지 평면 작업에 답답함을 느꼈다. 눈을 돌린 건 컴퓨터의 픽셀이었다. 기하학적 도형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 ‘공중무도회’(2021년)는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을 넘나들며 유희를 선사한다.

작품의 공간성에 대한 고민은 그의 퍼포먼스 작품 ‘연습’(2021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매주 토요일 오후 1∼5시, 퍼포머 5명은 시작 시간은 물론이고 러닝 타임도 정하지 않고 전시장 중앙에 놓인 무대와 전시 공간을 돌아다닌다. 무대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운 것. 첫 퍼포먼스이기에 제목 또한 ‘연습’이다. 작가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용기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할 때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여성인 자신의 존재를 회화로 탐구하는 윤석남은 삶의 의미를 되묻다 마흔이 넘어 미술에 입문했다. 서양화를 그리다 조선 화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접한 뒤 한국화에 기반한 여성 초상화를 그렸다. ‘소리 없이 외치다’(1992∼2009년)처럼 캔버스가 아닌 나무틀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장 초입에는 ‘식탁’(1987년) 같은 초기작 서양화와 ‘고카츠 레이코 초상’(2021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초상의 주인공은 윤 작가의 활동에 도움을 준 일본인 큐레이터다. 1982년 첫 개인전에 출품한 어머니의 초상부터 2000년대 이후의 미공개 드로잉 등을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세대의 작가들이지만 전시장 밖을 나갈 때쯤이면 이들의 나이는 중요치 않아진다. “젊은 작가들과 함께 전시할 수 있어 ‘잘 늙어왔구나’ 생각한다. 그림이란 것은 내가 모르는 너와 내가 통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는 윤석남의 말처럼. 내년 2월 6일까지. 5000∼7000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