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에 ‘번쩍’ 경복궁에 ‘번쩍’… 19세기 서울엔 표범이 살았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11-22 03:00:00 수정 2021-11-22 0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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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사슴 등 먹이 비교적 많고
방치된 궁궐터는 쉴 공간으로 충분
4대문 안 인구밀도는 현재와 비슷
사람과 맹수 공존할 방법 모색해야


서울역사박물관이 보유한 1890년대에 제작된 한양도성 지도다. 당시 표범이 목격된 지역을 빨간색 영역으로 표시했다. 보존과학 프런티어 제공
19세기 말까지 한양(서울) 4대문 안에 표범이 살았다는 기록이 잇따라 발견됐다. 사람들로 북적였을 조선 수도 한복판에서 사람과 표범이 100여 년 전까지 함께 살았다는 점에서 국내외 학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조슈아 파월 영국 런던동물학회 동물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서울대 수의과대학 방문연구원)은 노르웨이응용과학대 등과 함께 한양의 14∼19세기 기록을 근거로 19세기 후반까지 서울 도심 곳곳에 표범이 서식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보존과학 프런티어’ 15일자에 발표했다.

아무르표범은 과거 한반도에 주로 서식한 표범의 아종이다. 호랑이와 함께 ‘범’으로 통칭해서 부르기도 했다. 위키미디어(프라하동물원) 제공
연구팀은 흔히 ‘한국표범’으로 불리는 ‘아무르 표범’의 마지막 기록들을 추적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영국 대영도서관의 자료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통해 한양 도성에 등장한 아무르표범의 흔적을 찾았다.

1870∼1900년 사이 기록을 중점으로 살펴본 결과, 이 기간 표범이 살았다는 내용을 12건 확인했다. 일례로 미국의 의사이자 장로교 선교사였던 릴리아스 언더우드는 1888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표범(leopard)을 봤다”고 기록했다. 표범과 관련돼 마지막으로 확인된 기록은 1898년의 기록이다.

승정원일기에도 두 차례 기록이 나온다. 1893년 12월 경복궁 뒤뜰에 ‘호랑이(虎)’가 나타나 포수 40명과 병사 20명까지 대동해 5일 동안 뒤쫓았으나 끝내 잡지 못하고 철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구팀은 이 기록의 ‘호랑이’가 실제론 표범일 것으로 추측했다. 당시 한양도성이 6∼8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호랑이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표범과 호랑이를 뭉뚱그려 ‘범’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지금도 표범이 목격되는 인도의 뭄바이, 케냐의 나이로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와 옛 한양 도성의 공통점을 분석했다. 당시 한양에는 표범이 섭취할 수 있는 먹이가 비교적 풍부했다. 19세기 후반 4대문 안에는 개, 돼지, 사슴이 도심 골목을 배회한 기록들이 있다. 또 표범이 낮에 쉴 공간도 비교적 많았다. 19세기 후반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등이 일부 훼손되고 방치된 시기에 그 안의 큰 정원은 표범의 쉼터였다. 뭄바이와 나이로비의 국립공원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지만 인간의 방해 없이 쉬기에는 충분하다는 게 연구진의 평가다. 한양도성 주변의 우거진 산림도 표범의 광범위한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겨울철에 도성에서 표범을 목격한 기록이 많았는데 따뜻한 계절에는 산속에서 살다가 추운 겨울 성벽을 뛰어넘어 도성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1910년 일본이 대대적으로 한반도 내 유해동물 박멸을 시행하면서 표범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표범은 1970년 일부 산악 지역에서 발견된 이후로 이제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현재 아무르 표범은 북한과 러시아, 중국 경계의 일부 지역에만 발견되며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됐다.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사람과 표범이 친근한 존재는 아니었어도,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를 회피하며 공존했다”며 “근래 세계 도심 곳곳에서 맹수들이 출현하고 있는데 이런 과거 기록을 통해 사람과 맹수가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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