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과거 애플·잡스 전담 뱅커 만나 삼성 미래 고민 털어놨다

뉴스1

입력 2021-11-12 09:45 수정 2021-11-1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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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11/뉴스1 © News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12월 골드만삭스 고위 임원을 만나 반도체, 스마트폰 등 삼성의 핵심사업 투자전략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한 건의 영문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 이메일은 2014년 12월8일 미국 골드만삭스(GS)의 진 사익스 당시 공동회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대표 등 3명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 ‘홀로서기’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고뇌와 경영철학, 사업구상 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사익스는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서 IT, 이동통신, 미디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던 인사로, 미국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뱅커로 유명했다. 이 부회장을 알게 된 것도 잡스의 소개 덕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 사익스(Gene Sykes) 골드만삭스 전 공동회장 © 뉴스1

사익스는 정 대표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제이(Jay. 이재용 부회장)가 오늘 저를 만나러 왔다’면서 대화 내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우선 사익스는 이 부회장과의 대화 가운데 대부분이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 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애플과의 지속적인 공급 관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당시부터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전략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 부회장의 구상은 최근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 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등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과거 아이폰의 ‘카피캣’이라는 조롱을 받았던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은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폼 팩터의 스마트폰인 ‘갤럭시 폴드’와 ‘갤럭시 플립’ 등 폴더블폰을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키며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2021.8.13/뉴스1 © News1

삼성전자는 1993년 이래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유지해 온 ‘절대 강자’이기도 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비전에 따라 삼성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 17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캐나다 등 5개국에 글로벌 AI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한편 글로벌 석학들을 영입하고 관련 행사도 개최하면서 AI 분야 연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 성공과 6G 선행기술 연구를 통해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로도 부상했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은 사익스와의 면담에서 이른바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은 당시 추진하던 방산, 화학 분야 등 비핵심 사업 정리를 언급한 뒤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고 사익스는 밝혔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는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의지를 당시부터 견지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사익스는 당시 이 부회장이 ‘주주들과 다른 사람들도 소유 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하려는 노력을 결국 인정해줄 것’이라고 말한 내용을 전하며,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화하려는 큰 방향성에 대해 자신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사익스는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이 부회장)는 비록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돼 있다고 말했다”고 이메일에서 소개했다.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7개월밖에 되지 않는 시점이었으나 상속세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된 상태로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음을 추측케 하는 내용이다.

검찰은 2014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이 커지자, 그해 6월 이 부회장과 미전실이 찬성표 확보를 위해 골드만삭스 미국 본사 투자은행(IB)부문 회장 등과 만나 긴급 대응 전략을 세웠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익스의 메일을 통해 파악된 당시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관계자들을 만나 삼성의 미래 전략에 대한 자문을 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익스의 이메일 내용에는 이 부회장의 당시 고민과 철학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면서 “당시 대화 내용은 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의 사업 방향과 상당부분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것은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업 현안과 미래 전략에 대한 자문을 받기 위한 것이었음이 확인됐다”며 “상속세 마련을 위한 삼성생명 지분 매각 논의를 목적으로 골드만삭스와 잇따라 접촉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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