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發 부동산실험, 찻잔 속 태풍 vs 변혁 이끌 바람

황재성기자

입력 2021-11-11 11:20 수정 2021-11-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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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빠르면 내년 초라도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내정한 김헌동 후보자는 10일(어제) 열린 서울시의회 인사청문회에서 “(주거문제에 대한) 시민 불안 해소를 위해 ‘반값 아파트’를 넉넉히 공급해 주택 매입 초기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지론인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에 대한 의지도 거듭 밝혔다.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과거 10년간 아파트 건설 원가 등 시민이 요구하는 자료들을 인터넷 등 열린 공간에 상시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이와 관련, 청문회 직후 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고 서울시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김 사장의 임명을 강행할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명절차를 고려할 때 김 후보자는 이르면 12일(내일), 늦어도 다음주 초에는 취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동안 적잖은 논란을 불러왔던 ‘반값 아파트’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전면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김 사장을 앞세운 오세훈 발 부동산 실험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적잖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역대 정부에서 여러 차례 도입을 시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방치됐던 정책들이다. 따라서 이번 시도가 성과와 변화를 이끌어낼지, 아니면 이전처럼 찻잔 속 태풍에 머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반값 아파트…저렴한 분양가 vs 현실성 떨어진다
김 후보자가 제시한 ‘반값 아파트’는 토지 임대부 분양주택을 말한다. 토지소유권은 SH가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형태이다.

토지 임대부 분양주택은 2006년부터 국내에서 도입이 추진됐지만 장점과 단점이 뚜렷해 활성화되지 못했다.

장점을 살펴보면 우선 저렴한 분양가를 꼽을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분양가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수준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싸질 수 있다. 이밖에 지가 상승에 따른 개발이익의 사유화를 막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반면 사업 초기 자금 부족에 따른 재정 부담과 건물 반환 시점에 거주권의 인정 범위 등을 둘러싼 민원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단점이다. 거주자가 정부에 토지 사용료 명목으로 임대료를 별도로 지불하는 점과 주택을 거주보다는 소유 대상으로 보는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도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토지 임대부 주택을 지을 토지 확보가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싱가포르는 1900년대부터 국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토지를 다수 확보해둔 상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토지 임대부 주택으로 사용할 대규모 택지가 많지 않다. 10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도 서울시 의원들은 이점을 집중적으로 꼬집으면서 현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부 의원들은 “실현성 없는 수사학에 가까운 문구”라고 공격했을 정도다.

김 후보자는 이에 대해 당장 활용 가능한 부지로 은평구 서울 혁신파크, 용산 정비창 부지, 강남구 세텍 부지, 수서역 공영주차장 부지 등을 거론했다. 이어 “작은 규모 택지는 물론 공공 보유 토지, 공기업 이전 토지, 민간 비업무용 토지 등을 조사하고, 서울 전 지역에 빈 땅을 찾아 토지를 비축하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분양가 공개…아파트값 거품 제거 vs 전례 없고, 실익 없다
김 후보자는 이날 자신의 평소 소신인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과거 2007년부터 약 5년 동안 SH가 공개한 분양원가와 분양가는 다른 공기업과 민간 아파트 분양가격에 영향을 줬고 서울지역 아파트값 거품이 제거될 수 있었다”며 “현재 공사가 보유 중인 공공주택의 유형별, 소재지별, 평형별 실태를 시민 누구나 알기 쉽게 정리해 인터넷 등에 상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0년 중 최근 5년 간 분양된 아파트의 원가를 분석해 건축비와 토지비를 구분하고, 어느 정도 금액이 적당한지를 밝히는 분양원가를 공개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1981¤2000년 쌍용건설에서 근무하고 2000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활동하며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등을 지내면서 분양원가 공개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또 경실련이 2019년 4월부터 SH를 상대로 진행 중인 마곡지구 등에 대한 분양원가 공개 청구소송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양원가 공개는 그동안 아파트값을 내리는 수단이 될 수 없고, 시장이나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지적에 중단됐던 정책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아파트 분양원가는 동일한 설계도면을 가지고도 지역마다, 공사현장마다 원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 민원과 인허가 과정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원가에 반영할 사업자 이익도 건설사-토지주-시행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아파트 분양가가 낮게 책정됐다고 해서 기존 아파트값이 하락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분양가 상한제 등이 적용되면서 양산된 ‘로또 아파트’ 논란이 이를 반증한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이미 역대 정부에서 분양가 공개 도입 시도가 있었다가 실패한 전례가 있었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하는 일은 없다”며 “또다시 분란만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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