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의 ‘머릿속 시한폭탄’… ‘혹시나’ 싶을 땐 뇌혈관 검사를

홍은심 기자

입력 2021-11-10 03:00 수정 2021-11-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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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동정맥 기형
주로 20∼40세 젊은 층에서 나타나… 환자 가운데 2∼4%서 뇌출혈 발생
뇌혈관조영술 통해 면밀하게 진단… 감마나이프로 절개 없이 치료 가능
크기 3cm 이하 땐 완치율 70% 선


최석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가 환자에게 감마나이프 수술을 안내하고 있다. 경희의료원 제공

뇌동정맥 기형은 선천적인 발달 이상으로 동맥이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맥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혈관 기형이다. 동맥과 정맥이 직접 연결되면서 그 주위에 비정상적인 혈관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뇌동정맥 기형이 발생한다. 뇌동정맥 기형의 경우 치료 후에도 3∼5년에 걸쳐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추적·관찰이 중요하다.

최석근 경희의료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동정맥 기형에 감마나이프를 시행한다. 최 교수에게서 뇌동정맥 기형의 원인과 진단, 그리고 감마나이프 치료 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확한 원인 규명 ‘아직’… 합병증 위험 커


뇌혈관은 산소와 영양소가 풍부한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과, 동맥에서 공급된 혈액을 다시 심장으로 운반하는 정맥,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모세혈관으로 나뉜다. 혈액이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뇌동맥에서 뇌정맥으로 바로 연결되면 그 주위에 비정상적인 혈관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문제가 발생한다.

뇌혈관 내에서 비정상적인 혈액 순환 과정이 지속되면 구불구불한 혈관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이 혈관 덩어리들이 주변 뇌를 압박하면 뇌압이 상승해 두통, 간질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뇌동맥에서 뇌정맥으로 혈액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정맥 내 압력을 상승시켜 혈류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뇌출혈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뇌동정맥 기형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대체로 가족력은 없으며 유전성을 갖지 않는다. 선천적인 뇌혈관 기형 구조가 점차 발달해 보통 20대 이후, 주로 20∼40대 젊은층에서 뇌동정맥 기형이 나타난다. 뇌동정맥 기형 환자의 2∼4%에서 뇌출혈이 발생하고 뇌출혈이 발생한 환자의 50∼80%는 심각한 합병증을 겪게 된다. 특히 발병자의 10명 중 1명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특히 주의해야 한다.

뇌동정맥 기형은 시간이 갈수록 크기가 점점 커지는 등 모양이 변하거나 혈전(핏덩이)이 생겨 저절로 막히기도 한다. 그러나 크기 1cm 이상인 뇌동정맥 기형의 경우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뇌동정맥 기형 환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질환을 모르고 있다가 두통, 경련발작, 뇌출혈로 병원을 찾았을 때 뇌동정맥 기형으로 진단받는다. 갑작스러운 극심한 두통, 사지 힘 빠짐, 사지 감각 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반드시 뇌혈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최 교수는 “뇌동정맥 기형의 증상은 대체로 20∼40세 무렵에 처음 나타나는데 뇌출혈로 이어질 경우 생명까지 잃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혈관조영술로 정확한 진단 후 맞춤 치료를


뇌동정맥 기형 진단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뇌혈관에 직접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뇌혈관조영술이 필요하다. 뇌혈관조영술은 뇌동정맥 기형의 크기나 위치뿐만 아니라 혈류의 흐름도 알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검사다.

뇌동정맥 기형의 크기가 작고 모양이 단순할수록 완치 가능성이 크다. 반면 크고 복잡한 기형일수록 완치가 어려워진다. 치료는 뇌동정맥 기형 환자에 따라 맞춤형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에 정형화된 치료법이 없다. 증상, 기형의 위치, 크기, 모양, 환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뇌혈관 수술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는 것이 좋다.

치료 방법은 크게 미세 수술, 혈관 내 수술, 방사선 수술로 구분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세 수술로 주변 뇌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뇌동정맥 기형을 완전히 절제하는 것.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재출혈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지만 기형이 뇌의 심부나 좌뇌와 우뇌 사이 공간에 위치하면 수술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수술로 인한 정상 뇌조직 손상도 위험 요소다.

혈관 내 수술은 미세 수술이나 방사선 수술을 시행하기 전 보조 요법으로 주로 시행된다. 대퇴부를 조금 절개해 뇌혈관으로 향하는 동맥에 얇은 관을 삽입하는데 삽입한 색전 물질을 통해 뇌동정맥 기형으로 가는 혈류를 막는 방법이다. 혈관 내 수술로 혈류 덩어리 크기를 줄임으로써 수술적 제거나 방사선 수술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약 10% 정도를 차지하는 비교적 단순한 뇌동정맥 기형의 경우 완치를 목적으로 혈관 내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방사선 수술은 머리를 열지 않고 감마나이프와 같은 방사선 수술 장비를 이용한다. 충분한 방사선량을 한 번에 그리고 정확히 조사함으로써 주위 신경조직의 장애를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절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환자의 부담이 적고, 크기 3cm 이하의 뇌동정맥 기형에서는 완치율이 70% 정도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뇌동정맥 기형이 완전히 막혀 사라지는 데 2∼3년가량 소요된다.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출혈의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감마나이프의 작동 원리는 돋보기를 이용해 종이를 태울 때 한 점에 초점을 맞춰 빛을 모으는 것과 같다. 환자가 201개의 작은 구멍이 뚫린 반구형 헬멧을 머리에 착용하면 마치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이 병변 부위에만 방사선을 집중해서 쏜다. 정상 조직은 적은 양의 방사선만 통과하기 때문에 방사선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

최 교수는 “복잡하게 엉켜 있는 뇌동정맥 기형은 정상 혈관과 기형 혈관의 병변을 설정하는 것이 치료의 관건”이라며 “뇌혈관 전문의가 아니면 치료가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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