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허벅지 굵기만한 해저케이블 수백km, 똬리 튼듯 감겨있어”

동해=홍석호 기자

입력 2021-11-09 03:00 수정 2021-11-0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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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동해사업장 가보니

강원 동해항에 정박한 포설선에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생산한 해저케이블이 실리고 있다. LS전선은 최근 대만 해상풍력단지의 대규모 해저케이블 사업을 수주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LS전선 제공

5일 강원 동해시 동해항. 지름 수십 m의 턴테이블(케이블을 감아 보관할 수 있는 설비)에 똬리를 튼 것처럼 감겨 있던 건장한 성인 남성 허벅지 둘레 굵기의 해저케이블이 분당 8m의 속도로 바다를 향해 움직였다.

해저케이블의 끝에는 최대 1만 t까지 케이블을 실을 수 있는 포설선(케이블을 싣고 해저에 설치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춘 배)이 있었다. 포설선에 설치된 턴테이블에서 케이블을 당기면 동해항에 감겨 있던 케이블이 풀려 배에 실렸다. 멀리서 보면 큰 뱀이 배에 실리는 것 같다. 대만으로 향할 예정인 포설선에서는 지난달 28일 시작된 선적 작업이 밤낮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수백 km에 달하는 해저케이블은 동해항과 길 하나 사이에 접해 있는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생산됐다. 이곳에선 해저케이블과 선박, 광산 등에서 쓰는 산업용 특수케이블을 만든다.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해저케이블 제조·시공 턴키(일괄수주계약) 계약이 가능한 회사는 LS전선을 포함해 전 세계에 5곳뿐이다.

케이블은 구리선으로 만든다. 90개 이상의 구리선을 가늘게 꼬아 도체를 만든 뒤 표면에 폴리에틸렌(PE)과 금속을 입히는 절연 등의 과정을 거치면 하나의 단심 케이블이 만들어진다. 단심 케이블은 세 가닥씩 묶어 포설한다. 이게 비용과 편의성 측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묶은 케이블을 스틸와이어, 아스팔트, 플라스틱 등으로 감싸면 지름 15cm 안팎의 케이블이 완성된다.

공장에서 만든 케이블은 육교처럼 생긴 이동로 ‘갱웨이’를 통해 동해항 턴테이블로 옮겨진 뒤 포설선이나 화물선에 실려 국내외 곳곳으로 향한다. LS전선은 올 1∼7월 1억4400만 달러(약 1705억 원)어치를 수출했다. 강원도 전체 수출의 9%가 넘는 규모다.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은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바다 위 풍력발전기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육지로 날라야 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육지와 가까운 섬에 풍력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에 100km 이하 짧은 거리를 잇는 교류(AC) 케이블이 주였으나 최근에는 바다 위 대규모 해상풍력단지가 늘고 있어 초장거리를 잇는 직류(DC) 케이블 수요가 커지고 있다. 국내 유일의 해저케이블 제조 공장인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선 교류와 직류 케이블을 모두 생산한다. LS전선은 최근 대만에 조성되는 해상풍력단지의 초고압 해저케이블 공급권(약 8000억 원 규모)을 따내기도 했다.

2008년 해저케이블 사업에 처음 뛰어든 LS전선은 프랑스 넥상스, 이탈리아 프리스미안 등 수십 년간 해저케이블 사업을 해온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2019년 제2동, 지난해 제3동, 올 10월 제4동 등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온 결과다. LS전선은 최근 63층 높이의 해저케이블 생산타워를 동해에 짓기로 결정했다. 당초 베트남 중국 등을 검토했으나 국내에서 생산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LS전선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국내 사업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도 이바지할 계획이다. 명노현 LS전선 대표(사장)는 “탄소중립을 위한 세계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로 해저케이블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 투자를 확대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동해=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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