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반도체 정보 美 제출 시한 D-4…“여러가지 상황 고려중”

뉴시스

입력 2021-11-04 13:38 수정 2021-11-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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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주요 공급망 정보 제출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정보 공개 수위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 중이다.

국내 기업들은 민감 정보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수준으로 설문조사를 마친다는 전략이지만, 칼자루는 미국 측이 쥐고 있다. ‘기업 자율에 맡긴다’던 미 상무부는 “응답 수와 질에 따라 강제로 응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혀 앞으로 제2, 3의 요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은 고객사와의 계약서상 기밀유지협약(NDA)을 깨지 않는 선에서 마감 시한인 8일까지 미 상무부에 자료를 제출할 전망이다.

미 상무부 기술평가국은 지난 9월24일(현지 시간) ‘반도체 공급망 위기에 대한 공개 의견 요청 알림’이라는 글을 관보에 게재하고, 공급망 전반에 걸친 기업들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는 백악관이 추진 중인 반도체 대책 회의의 후속 조치다.

미국은 차량용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서 공급망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 중이다.

문제는 미국 행정부에서 제출을 요구하는 정보가 제품별 주요 고객 명단과 매출 비중, 재고, 수율 등으로, 하나 같이 영업 비밀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업계는 몇몇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독과점 시장인데, 단 한 건의 정보 누출만으로도 가격 협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기업 생존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 때문에 전례 없는 미 정부의 요구에 대해 전전긍긍해오다 최근에는 설문조사에 협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미 미국의 인텔, 독일의 인피니온 등은 정보 제공에 협조할 뜻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도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을 제외하고 자료 제출에 응하기로 한 사실이 외신 등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약해졌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차분히 잘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내부에서 검토 중이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도 정보 제공 수위를 조절해 설문에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 정부는 이번 설문조사를 계획한 배경으로 자국의 주요 산업인 자동차 산업이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어, 어느 지점에서 공급 경색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겠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경계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초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분야에 대한 의미 있는 통제권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자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한편, 중국을 배제하는 등 미·중 패권 경쟁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자국 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 미국 내 제조기반 확충, 동맹국과 협력 강화 등뿐 아니라 네덜란드 기업인 ASML에 대중국 수출금지 조처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 행정부가 수거한 설문조사를 자국 반도체 산업에 유리한 쪽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더구나 인텔이 지난 8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상무부 차관을 지낸 브루스 앤드루스를 기업 부사장 겸 최고 정부 업무 책임자로 임명한 바 있어 자칫 우리 기업의 민감한 정보가 경쟁 업체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정보 제출 요구가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외신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이번 설문조사와 관련 “정보 제출은 자발적이지만, 이 정보는 공급망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강제조치를 사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얼마나 많은 기업이 참여하고 공유된 데이터의 질에 달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한 기업 정보를 제외하고 제출하겠지만 미국 상무부가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상무부의 앞으로 후속조치가 무엇인지를 지켜봐야겠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파운드리 산업 등에 또 다른 압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에 170억 달러(20조원)을 투자해 제2 파운드리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며, 파운드리와 시스템 LSI 등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앞으로 약 17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최근 키파운드리를 5758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해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키울 계획이다. 또 최근 모회사로 신설된 정보통신기술(ICT)·반도체 전문 투자회사 ‘SK스퀘어’와 함께 반도체 M&A(인수합병) 시장에서 투자 기회를 모색 중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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