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택배노조에 괴롭힘 당한 비노조 근로자, ‘직장내 괴롭힘’ 적용 못받아 보호 사각

변종국 기자

입력 2021-11-03 03:00 수정 2021-11-0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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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택배근로자는 특수고용직…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 안돼
노조원 폭언-욕설, 괴롭힘 맞지만 법적 괴롭힘 조항 적용못해” 결론
“특수고용직 보호 개선 필요” 지적


동아일보 DB

고용노동부가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에게 괴롭힘을 당한 비노조 택배 근로자가 낸 진정에 대해 “택배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괴롭힘 방지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안을 조사한 고용청의 관계자는 “내용상으로는 괴롭힘이 맞지만 법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을 적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되지만, 택배 근로자나 골프장 캐디 등은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종사자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법적으로 보호해 주기 어렵다는 뜻이다.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보호해줄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고용부와 택배업계에 따르면 경기 김포시에서 택배 일을 하고 있는 A 씨는 올해 초부터 택배노조 조합원에게 폭언을 듣고 ‘갑질’을 당했다. 택배노조가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물건을 배송하지 않아 물류 차질이 생기자 이를 대신 처리했더니 택배노조원들이 “왜 남의 물건을 배달하느냐”고 항의를 하고 차량을 가로막는 등의 행동을 했다. 택배노조 조합원 일부는 택배 작업장에서 여성인 A 씨의 신체 일부를 밀치고 폭언, 욕설을 했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A 씨는 올해 8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넣었다. 고용청은 2개월간 사건을 조사한 끝에 “진정인과 피진정인(택배노조원) 간에 사용 종속적 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적용 대상이 아니라 행정 종결한다”고 최근 A 씨에게 통지했다.

사용 종속적 관계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요건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택배근로자는 택배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개인사업자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이 때문에 A 씨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76조의 직장 내 괴롭힘 처벌 조항을 적용받을 수 없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면 회사는 문제가 되는 근로자를 징계하거나 근무 장소 변경, 피해자로부터 분리 또는 격리 조치 등을 할 수 있다.

다만 고용청은 A 씨가 근무하는 택배 대리점에 △사업장 내 괴롭힘 실태 진단 △사내 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 행위 반영 △직장 내 괴롭힘 근절 예방 활동 실시 등의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근절 및 상호존중을 위한 권고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권고문을 건네준 것에 불과해 지키지 않는다고 처벌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A 씨는 “택배노조는 노동법에 따라 쟁의권을 갖고 있는데 비노조원들은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건 모순이다. 권고 조치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택배노조의 괴롭힘을 받고 있는 비노조원들은 호소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A 씨는 택배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형사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특수고용직이 직장 내 괴롭힘 조항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올해 2월 경기 파주시의 한 골프장 캐디는 직장에서 인격 모독 및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에도 고용청은 조사 끝에 캐디가 근로자가 아니어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직장 내 갑질 적용 범위를 현실적으로 바꾸는 등의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택배 비노조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택배업계 내에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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