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택배노조 괴롭힘 당해도 법적보호 못받는 비노조원, 왜?

변종국 기자

입력 2021-11-02 15:32 수정 2021-11-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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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청 “택배 근로자, 특수고용직이라 적용대상 제외”
“노조법상 근로자인데 근로기준법상 비근로자인건 모순” 지적


동아일보 DB

고용노동부가 택배 노조원에게서 괴롭힘을 당한 비노조 택배근로자가 낸 진정에 대해 “직장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지만, 택배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사건을 종결한다”고 판단했다.

택배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근로자여서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택배 근로자,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도 직장 내 괴롭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고용부와 택배업계에 따르면 경기 김포시에서 택배 일을 하고 있는 A씨는 올해 초부터 택배노조 조합원에게 폭언을 듣고 갑질을 당했다.

택배 노조가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물건을 배송하지 않아 물류 차질이 생기자 이를 일부 대신 처리했는데 택배 노조원들이 “왜 남의 물건을 배달하느냐”며 A씨의 차량을 가로 막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또 택배 노조원 일부는 택배 터미널 작업장에서 노조에 협조적이지 않는 A씨를 향해 신체 일부를 밀치거나 폭언 또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

A씨는 택배노조 갈등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올해 8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직장내 괴롭힘 진정을 넣었다. 고용청은 2달 동안 사건을 조사한 끝에 최근 “진정인과 피진정인(택배노조원) 간에 사용 종속적인 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상의 직장내 괴롭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사건을 행정 종결한다”고 통지했다.

사용 종속적인 관계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요건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택배근로자는 택배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개인사업자라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가 아니다. 결국 A씨는 근로자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처벌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면 회사는 문제가 되는 근로자를 징계하거나, 근무 장소를 바꾸거나, 피해자로부터 분리 또는 격리 조치 등을 할 수 있다.

다만 고용청은 A씨가 근무하는 택배 대리점에 △사업장 내 괴롭힘 실태 진단 △사내 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 행위 반영 △직장 내 괴롭힘 근절 예방활동 실시 등의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근절 및 상호준중을 위한 권고문’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A씨는 “택배 노조에게는 노동법에 따라 쟁의권을 주면서 비노조원들이 특수 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건 모순이다. 택배노조에게서 괴롭힘을 받고 있는 비노조원들은 호소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고용청 관계자는 “내용상으로는 괴롭힘이 맞다. 그러나 노조법상으로는 근로자로 인정해주면서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건 법률상 불일치로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종종 있지만 이 모순 때문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2월 경기 파주시의 한 골프장 캐디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당시 고용청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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