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탄소중립 비용 油化 92조, 철강 71조… 무대책 中企 고사 위기

세종=김형민 기자 , 세종=송충현 기자

입력 2021-11-02 03:00:00 수정 2021-11-02 0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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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감축 ‘COP26’ 개막]산업계 탄소중립 후폭풍〈상〉대책 없는 제조업체들

지난달 27일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사에서 한 직원이 부품을 가공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친환경차 생산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이 화사의 발주 물량이 크게 줄었다. 안산=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발전설비를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바꾸려면 300억 원이 넘게 드는데 어떻게 바꾸겠어요.”

부산 사하구 염색산업단지에 입주한 동진다이닝의 김병수 대표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산단이 발전설비를 바꾸고 싶어도 엄두를 낼 수 없는 현실을 이같이 설명했다. 산단은 발전설비를 유연탄 발전방식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방식으로 바꾸려 했지만 설비 교체 비용만 350억∼400억 원이 든다는 컨설팅 결과를 받고 교체를 망설이고 있다. 정부의 설비 교체 지원비 한도는 100억 원. 김 대표는 “탄소중립 정책이 생겼으면 정부도 추가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를 달성하고 203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줄이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정안’을 확정하자 산업 현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영 위기보다 더 큰 어려움이 닥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특히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정부가 탄소중립 소요비용 공개해야”


1일 산업연구원이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탄소중립 감축수단별 비용 추정’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0)로 감축하려면 석유화학 기업들은 91조7530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석유화학,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멘트, 정유 등 6개 주요 산업분야 가운데 석유화학 분야 비용이 가장 높았다. 연료나 원료를 수소나 바이오로 전환하는 비용이 약 89조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철강기업들의 비용 추산치는 71조770억 원으로 두 번째로 높았다. 수소환원제철 도입 비용이 약 67조 원이었다. 6개 업종이 2050년까지 부담할 비용은 199조 원에 달했다. 기술 검토가 힘든 비용을 제외한 수치로 실제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추산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정확한 지원을 위해선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며 공개를 요구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정유·철강·석유화학 산업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목돼 업계에서 퇴출될 수 있다”며 “일자리 보존 방안을 마련하고 탄소중립 소요비용을 산정해 정부가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에선 탄소중립 정책을 이행하려면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조준상 대한석유협회 산업전략실장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정유 산업에서 약 100조 원의 전환·매몰 비용이 발생하고 2050년까지 700조 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해 총 800조 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기업들은 특히 설비 비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이 올해 2월 중소기업 319곳을 설문한 결과 탄소중립을 준비하기 어려운 이유로 ‘공정개선·설비도입 비용부담’(44.3%)을 가장 많이 꼽았다.

○ 탄소중립으로 산업 구조조정 가속화

산업계는 탄소중립으로 산업 재편에 탄력이 붙자 구조조정 진통까지 앓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인건비 증가, 코로나19에 따른 경영난에다 탄소중립발(發) 구조조정 리스크까지 맞았다.

경기 안산시에서 자동차부품회사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59)는 지난해 7월 원청업체로부터 이달 납품물량을 11분의 1로 축소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 물량을 늘리며 내연기관 자동차부품 발주를 줄였기 때문이다. 폐업까지 고려 중인 김 대표는 “지난해부터 납품 물량이 준 이유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산이 감소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더 큰 원인은 산업이 친환경차로 전환되는 데 있었다”고 했다. 중진공 설문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인 56.1%가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준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종수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교수는 “정부가 대기업과 공기업 중심으로 탄소중립 기술력을 키우고 이 기술력을 중소기업에 적극 이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지금의 중소기업 정책이나 비용 보전만으로 탄소중립을 이행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산=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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