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렉스, 탄탄한 몸매, 정치인 저격으로 ‘좋아요’를 산 2030

이기욱 기자

입력 2021-11-02 03:00 수정 2021-11-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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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좋아요…’ 펴낸 정연욱씨
명품-고급차 사진 도배하는 ‘물질파’… 화려한 외모로 유명세 타는 ‘육체파’
화제 이슈에 지식 과시하는 ‘정신파’… SNS 인플루언서 325명 인터뷰해
“자기삶 소재로 쉽게 유명해지지만, 인기에 의존하며 공허함 느끼기도”



‘지금 여의도 ○○ 고깃집에서 한우 먹을 사람, 선착순 3명!’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조정호(가명·31)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런 글을 종종 올린다. 팔로어들의 충성도를 수시로 확인하기 위한 것. 이들은 ‘우왕 맛나겠당. 저도 사주세요’ ‘지금 홍대인데 바로 한강 건넙니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환호한다. 인스타그램에는 본인 소유의 벤틀리 등 고급 자동차 사진이 즐비하다. 이른바 ‘금수저’인 그는 8년 전 부모 도움으로 성형수술도 받았다. 약 1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중 상당수가 그의 물질적 과시에 열광한다.

최근 출간된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천년의상상)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000명 이상의 팔로어를 보유한 2030세대 인플루언서 325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생인 저자 정연욱 씨(38)가 이들을 심층 인터뷰해 어떤 심리로 SNS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분석한 결과물. 정 씨는 “SNS를 통해 큰 노력 없이 유명해지는 게 가능해졌다”며 “2030세대가 자기 과시나 현실 탈피의 수단으로 SNS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정연욱 씨는 “인플루언서도 이제 하나의 직업이 된 것 같다”며 “SNS를 통해 단기간에 인기와 부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속에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 씨는 책에서 인플루언서를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로 분류한다. 물질파는 조 씨처럼 SNS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인기를 얻는다. 이들은 돈으로 인기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팔로어들이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면 인간관계에서 공허함을 느끼기 일쑤다.

육체파는 외모를 강조해 유명세를 얻은 이들로 연예인 지망생이 많다. 예컨대 보디클렌저 모델인 김준(가명·26) 씨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20만 명이 넘는다. 탄탄한 몸매와 뚜렷한 이목구비로 태국에서도 관심을 끌 정도. 그의 계정에는 ‘Oppa, Where are you?(오빠 어딨어?)’라는 글을 다는 태국 여성들이 적지 않다. 팔로어들은 그의 벗은 몸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이 때문에 김 씨는 광고 촬영 때 속옷까지 벗으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내면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받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정신파는 지적 능력으로 승부를 건다. 정치, 사회, 문화에 걸쳐 대중이 관심을 갖는 이슈에 대해 소위 ‘썰’을 푸는 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업무 시간에 상사의 눈을 피해 SNS 글을 올리는 월급쟁이들이 적지 않다. SNS에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업무성과가 떨어지고 오프라인 인간관계에 취약한 이들도 있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이우성(가명·32) 씨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페이스북 정치비평 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는지부터 확인한다. 주로 정치인을 저격한 글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다. 소신 발언을 하다 공천에서 탈락한 국회의원에 대해 ‘소신이 아닌 내부 규칙을 흔드는 변절자의 최후’라는 악평을 남겼다. 이 씨는 “내 글이 온라인에서 파급효과를 일으켜 정치권에 영입되는 꿈을 꾼다”고 했다.

저자는 “인플루언서들은 자기 삶을 소재로 삼아 유명해졌다는 점에서 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해야 하는 행태는 자기주도적인 삶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여주려는 과정에서 현실의 삶과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생리를 짚고 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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