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도회 출신 60세 ‘젊은’ 교구장 경청의 달인… 가톨릭 새 활력 기대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11-01 03:00 수정 2021-11-01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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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정순택 대주교 임명
예상보다 일찍 교체 배경은…
교회개혁 논의 ‘주교 대의원대회’… 최근 시작깵 정 대주교 중책 맡아
영성 전통 강한 가르멜수도회 출신, 로마 본부서 활동깵 바티칸 잘 알아
차기 추기경엔 유흥식 대주교 유력


지난달 28일 정순택 대주교 임명 감사미사에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왼쪽)과 정 대주교. 임명 뒤 첫 외부 일정으로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에 안치된 김대건 신부 유해 앞에서 기도하는 정 대주교(작은 사진).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지난달 2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순택 대주교(베드로·60)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했다. 염수정 추기경(78)이 교회법에 따른 교구장 정년(75세)을 넘겼지만 교황청에서 맡고 있는 성직자성, 인류복음화성 위원 임기(2023년까지)를 감안할 때 올해는 교구장 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기에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회 출신 첫 서울대교구장이자 ‘젊은’ 교구장 탄생의 배경과 궁금증을 정리한다.


○ 수도회 출신 첫 서울대교구장

서울대교구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는 최근 브리핑을 통해 “당초 예상보다 빨리 교구장님이 교체된 배경에는 최근 일정을 시작한 주교 시노드(대의원대회)가 많이 작용했을 거라고 염 추기경님과 다른 주교님들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85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시노드를 가톨릭교회 개혁의 중요한 기회로 여기고 있다. 정 대주교 임명은 새 교구장이 3년간 진행되는 시노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달라는 강력한 주문인 셈이다.

최대 교구이자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서울대교구장에 수도회 출신 사제가 처음 임명된 것은 파격적이다. 허 신부는 “2014년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 서울을 특별히 눈여겨보셨고 영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우리 교구가 영적인 열정을 회복하는 데 많은 힘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도회 출신 사제에 대한 신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교구장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거란 기대도 있다. 정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이 1968년 46세 때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후 가장 젊은 교구장이다. 올 4월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67세, 염 추기경은 69세에 교구장에 임명됐다. 정 추기경과 정 대주교가 같은 서울대 공대 출신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 정 대주교는 ‘경청의 달인’


정 대주교는 2009년부터 5년간 가르멜수도회 로마 총본부에서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으로 활동해 바티칸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가르멜수도회는 가톨릭 내에서 영성적 전통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설이 있지만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수도자들이 이스라엘 북부 가르멜산에 은거하면서 영성을 심화시킨 것이 수도회의 기원이 됐다. 스페인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1515∼1582)를 비롯해 십자가의 성 요한, 소화 테레사, 20세기 초반 여성 철학자 에디트 슈타인이 가르멜 출신 성인이다. 테레사 성녀는 여자 수도회를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봉쇄(封鎖) 수녀회로 창립했다.

가르멜수도회는 100여 개국에 수도원이 있으며 남자 수도자는 4000여 명, 봉쇄 수녀원 수도자는 2만여 명이다. 한국관구장을 지낸 윤주현 신부는 “가르멜수도회는 가톨릭이 세속화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샘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국내에는 남성 60명, 여성 150∼160명이 사제와 수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주교는 경청의 달인이자 영성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다. 정 대주교는 28일 임명 감사미사 뒤 축하식에서도 “염수정 추기경님과 여러 선후배 사제들, 우리 교회 안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하나씩 배워가겠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 이후 서울대교구장이 잇따라 추기경으로 서임됐지만 정 대주교가 당장 추기경으로 서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교계 관측이다. 현재로서는 교황청 성직자성(省) 장관인 유흥식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이 유력하다. 교계 관계자는 “성직자성 장관은 추기경들이 맡아왔기에 유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은 시간문제”라며 “한국에 3명의 추기경이 있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고 정 대주교도 젊은 편이라 또 다른 추기경 탄생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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