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4만원어치 투자합니다”… MZ세대, 조각투자에 꽂히다

김자현 기자

입력 2021-11-01 03:00 수정 2021-11-01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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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주식-가상화폐 투자 맛본뒤 투자 수익 높은 실물자산 눈돌려
‘뱅카우’ 한우 투자자 80%가 2030… 와인에 1000원 단위 지분투자
고급 시계-저작권까지 영역 확대, 투자자 보호 등 안정성 보증안돼



직장인 이모 씨(31)는 주식에 투자한 300만 원을 환매해 한우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축산 농가와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조각투자’ 플랫폼을 통해서다. 투자한 소가 커서 약 2년 뒤 경매를 통해 판매되면 투자 지분만큼 수익을 돌려받는 구조다. 이 씨는 “지난해 주식 투자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지만 최근 가격 변동이 심해져 피로감이 커졌다. 예금 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소라는 실물자산이 있어 한우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주식, 가상화폐 열풍을 계기로 투자에 눈뜬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조각투자에 뛰어들며 새로운 재테크 시장을 열고 있다. 조각투자는 개인이 혼자 투자하기 어려운 부동산, 미술품 등 고가의 자산을 1000∼10만 원 단위의 지분으로 나눠 여러 명이 공동 투자하는 방식이다. 한우, 음악저작권, 와인 등으로 조각투자 대상도 확대되고 있다.

● 송아지에 4만 원, 와인에 1000원어치 투자
31일 핀테크 업체 스탁키퍼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 ‘뱅카우’가 4차 펀딩를 시작하자 17시간 만에 1538명이 5억4042만 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스탁키퍼는 수도권 및 강원지역 축산 농가와 제휴해 최소 투자금 4만 원으로 한우에 투자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올해 5월 1차 펀딩에 나서자 생소한 한우 투자에 MZ세대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 뱅카우 측은 “1차 투자자 290명 중 80% 이상이 20, 30대였다. 펀딩을 거듭할수록 자금 동원력이 있는 30, 40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조각투자는 적은 돈으로 고가의 자산을 소유하고 투자 수익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를 추구하는 MZ세대를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롤렉스시계에 조각투자한 박기윤 씨(29)는 “명품시계를 살 여력은 안 되지만 좋아하는 시계의 일부라도 가질 수 있어 좋다. 롤렉스는 중고마저 구하기 어려워 투자 수익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조각투자 플랫폼 ‘트레져러’에서는 9월 ‘신의 물방울’로 유명한 와인 ‘로마네콩티 2009’를 1000원 단위로 쪼개 내놓자 2900만 원어치의 지분이 24분 만에 나갔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입자 71만 명을 둔 음악저작권 거래 플랫폼도 나왔다. ‘뮤직카우’에서는 원작자에게서 사들인 음악저작권을 주식처럼 쪼개 거래하며 지분만큼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다. 9월 말 가입자는 71만 명으로 1년 새 4.6배로 급증했다. 서울 도심 빌딩을 조각투자 대상으로 삼은 ‘카사’는 최근 3차 공모를 진행했다.

● “투자자 보호 강화돼야”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MZ세대와 새 시장을 개척하려는 핀테크 업체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조각투자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나 내부통제 시스템이 검증되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조각투자 플랫폼들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수익을 배분하는 투자 사업을 하지만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체로 등록한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통신판매중개업자로 등록돼 있어 플랫폼이 문을 닫는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 자산에 대한 실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검증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각투자는 명확한 공모 규정 등이 없고 공동구매한 자산의 소유권에 대한 법적 효력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며 “아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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