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별뒤 지팡이 짚고 입원… 95세 英여왕 건강에 쏠린 눈[글로벌 포커스]

파리=김윤종 특파원 , 김수현 기자

입력 2021-10-30 03:00:00 수정 2021-10-30 08: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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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개국 英연방 구심점’ 건강이상설
69년째 재임 세계 최장수 군주… 대체 불가능한 ‘통합의 상징’




엘리자베스 여왕 건강 악화설… 英왕실의 미래는
《영국의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95·사진)이 20일 런던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왕의 건강 상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왕실에서 독립한 해리 왕손 부부와의 불화설부터 4월 남편 필립 공과의 사별 등이 여왕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국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여왕이 남긴 것들과 그가 없는 왕가의 미래를 들여다봤다.》
남편 사별뒤 지팡이 짚고 입원… 95세 英여왕 건강에 쏠린 눈[글로벌 포커스]
2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 내 접견실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5)이 등장했다. 런던 근교 윈저성에 있는 여왕은 노란 옷을 입고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7월 부임한 김건 주영 한국대사는 이날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화상으로 여왕의 신임장을 받았다.

이날 영국 주요 언론은 여왕의 동정을 집중 보도했다. 앞서 20일 여왕은 런던의 한 병원에 입원했고 다음 날 퇴원했다. 여왕의 입원은 위장염을 앓았던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이로 인해 당초 예정됐던 아일랜드 방문도 취소해야 했다. 평소 건강했던 여왕이 퇴원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등장하자 언론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1952년 부친 조지 6세의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 여왕은 69년째 왕관을 쓰고 있는 세계 최장수 군주다. 직접 통치하지는 않지만 존재감과 상징성이 상당하고 현실 정치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여왕이 건강 악화나 고령으로 서거하면 영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54개국이 속한 영연방(The Commonwealth of Nations) 체제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남편 사망·해리 논란 등으로 건강 악화


여왕의 모후(母后·왕의 어머니) ‘퀸 마더’는 2002년 102세로 타계했다. 어머니의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은 여왕 또한 90대인 지금까지도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올 들어 발생한 여러 일이 고령의 여왕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왕실에서의 독립을 선언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 해리 왕손(37)과 메건 마클 왕손빈(40) 부부는 3월 미국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왕실 내에 인종차별이 있다”고 주장했다. 흑백 혼혈인 마클 왕손빈은 2018년 결혼 후 왕실 구성원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여왕은 이 인터뷰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월에는 74년간 해로했던 남편 필립 공이 100세 생일을 2개월 앞두고 숨졌다. 여왕은 “삶에 큰 구멍이 생겼다”며 상실감을 드러냈다. 차남 앤드루 왕자(61)는 오래전부터 미성년자 성매매 등 각종 성추문에 연루됐다. 왕실 전문가 케이티 니콜은 “충격적인 일들이 여왕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했다.

여왕은 1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왕립군단 출범 100주년 기념 미사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2004년 무릎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동안 잠시 지팡이에 의지한 적은 있지만 이후 공식 행사에서 지팡이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라고 더타임스 등이 전했다.

○ 영연방의 상징

여왕의 건강이 영국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것은 그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BBC는 전했다. 여왕이 제2차 세계대전, 냉전, 왕실에 관한 각종 추문과 군주제 폐지 논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분열된 여론을 한데 모으고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줬다는 의미다.

여왕은 1926년 런던의 부유층 거주지 메이페어에서 태어났는데 당시엔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다. 당시 국왕은 여왕의 조부 조지 5세였고,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직 국왕의 차남이었던 여왕의 부친 조지 6세와 퀸 마더는 여왕과 마거릿 공주(1930∼2002) 등 두 딸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았다.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관을 포기하자 여왕의 운명도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부친이 왕위에 올랐고 맏딸인 여왕 또한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초 19세 나이로 군번 ‘230873’을 받고 입대했다. 군용 트럭을 모는 운전수로 복무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1947년 필립 공과 결혼한 여왕은 폐암을 앓던 부친 조지 6세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자 부친을 대신해 공무를 돌봤다. 여왕은 1951년 10월부터 세계 순방에 나섰다. 이듬해 2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부친의 서거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1953년 6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TV로 생중계된 대관식을 치른 영국 군주는 그가 처음이다. 전 세계 2500만 명이 TV를 통해 행사를 지켜봤다. 당시 영국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약 4분의 1을 통치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위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세계 곳곳의 식민지가 속속 독립했다.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확보했고 소련의 위협도 상당했다. 영국 내에서도 군주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여왕은 영연방의 결속과 단합을 통해 이 어려움을 돌파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의 영연방 순방을 시작했다. 영국에서 1만 km 이상 떨어진 호주와 뉴질랜드를 찾은 군주는 그가 처음이었다. 인도 방문 또한 영국 군주로서 50년 만이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77년 런던에서 열린 그의 즉위 25주년 행사 때 영연방 35개국 지도자들이 모였다. AP통신은 “여왕은 고령에도 매년 런던에서 열리는 영연방 경기대회를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한다. 여왕이 영연방의 상징적 존재가 된 이유”라고 전했다.

현재 영연방 국가 중 영국 군주를 국가수반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15개국. 이들 나라 중에 올림픽을 개최할 때도 실질적인 통치자인 해당국 총리 대신 여왕이 개회 선언을 한 적이 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여왕은 몬트리올로 날아가 개회 선언문을 낭독했다. 여왕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도 개회 선언을 했다. 2개 나라에서 올림픽 개회 선언을 한 인물은 그가 처음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지폐에 여왕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 또한 여왕의 상징성과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 영연방 균열 본격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4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를 방문해 6대 웨일스 의회 개회를 공식 선언한 후 의사당 밖으로 나오고 있다. 내년에 즉위 70주년을 앞둔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번 달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지팡이를 사용한 데 이어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카디프=AP 뉴시스
이런 여왕이 없으면 영연방의 균열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여왕이 입원한 20일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여왕을 대신해 국가원수 자리에 오를 초대 대통령을 선임했다. 인구 28만 명의 바베이도스는 17세기에 영국에 점령됐고 1966년 독립했다. 이후 55년간 여왕을 국가원수로 삼아왔다. 실질적인 통치는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하지만 20일 바베이도스 의회는 샌드라 메이슨 현 총독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바베이도스가 입헌군주제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것이다.

여왕을 국가수반으로 두고 있는 나라에서도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월 여론조사회사 입소스가 캐나다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여왕이 국가수반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집권 자유당 소속인 맬컴 턴불 전 총리, 제1야당 노동당의 줄리언 힐 의원 등은 당적에 관계없이 “호주의 국가원수는 영국 왕이 아니라 ‘호주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1999년에도 군주제 폐지 찬반 투표가 실시됐다. 당시 54.9%가 반대해 부결됐지만 다시 같은 투표가 실시된다면 부결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미국의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가혹행위로 숨진 후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 철폐 및 과거사 바로잡기 움직임이 등장한 것 또한 군주제 폐지 여론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왕실 내 인종차별을 주장한 해리 왕손 부부의 인터뷰는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해당 인터뷰로 영연방 내 군주제 폐지 논쟁이 거세졌다. 인종차별, 식민통치 등의 흔적을 없애기 위서라도 영국 왕을 군주로 두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 또한 영연방 국민들은 군주제 자체를 선호하기보다 여왕 개인을 지지하는 팬에 가깝다고 전했다. 여왕 개인의 인기와 지도력으로 영연방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 못 미더운 후계자와 군주제 폐지 논란

여왕의 후계자인 찰스 왕세자(73)가 영국 안팎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왕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 찰스의 불륜이 다이애나 왕세자빈(1961∼1997)과의 이혼으로 이어진 데다 다이애나가 자동차 사고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숨진 것 또한 찰스에 대한 국민 지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그가 2016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동예루살렘을 방문해 비밀리에 헌화했다는 점도 국내외 정치에 대한 엄격한 중립을 표방한 왕실의 불문율을 어긴 행동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유리한 정책을 공개적으로 홍보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왕과 왕실에 관한 각종 책을 쓴 저술가 클라이브 어빙은 3월 ‘채널4’ 방송에 출연해 “찰스 왕세자는 여왕이 기대하는 책무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군주제 폐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5월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영국인 48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8∼24세 응답자의 41%가 “군주가 아닌 선거로 뽑힌 국가원수를 가져야 할 때”라고 답했다.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답은 31%에 그쳤다. 6월에는 학생회 결정으로 옥스퍼드대 학생 휴게실에 걸린 여왕 초상화가 철거됐다. 식민 역사를 연상시키는 상징물이라는 이유에서다.

군주제를 반대하는 국민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문제는 ‘돈’이다. 국가 재정은 빠듯한데 막대한 세금으로 왕실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실제 왕실이 쓰는 돈, 즉 ‘왕실 교부금(sovereign grant)’은 늘고 있다. 2012년 3240만 파운드였지만 2016년 3980만 파운드로 불었고 지난해 6940만 파운드(약 1117억 원)를 기록했다.

왕실 구성원의 호화로운 생활도 종종 입방아에 오른다. 해리 왕손 부부는 201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10일간 방문하면서 24만6000파운드(약 3억9000만 원)를 썼다. 지난해 찰스 왕세자 또한 중동 오만을 방문할 때 21만 파운드를 지출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여왕은 여전히 인기가 있지만 왕실 자체에 대한 신뢰는 하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찰스 왕세자가 승계를 한다고 해도 고령, 비호감 이미지 등으로 재위 기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버지보다 여론 지지가 높은 윌리엄 왕세손(39)이 찰스를 건너뛰고 곧바로 왕위에 오르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8월 유고브 조사에서 응답자의 80%는 “윌리엄 왕세손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찰스의 지지율은 58%에 그쳤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모를 리 없는 찰스 왕세자 또한 왕위를 물려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왕실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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