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박인비’ 두 날개 단 韓골프, LPGA 200승 고지[김종석의 TNT 타임]

김종석 기자

입력 2021-10-28 14:46:00 수정 2021-10-28 16: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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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감독과 선수로 출전한 박세리와 박인비. 박인비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박세리는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동아일보 DB


한국 골프는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통산 200승 고지에 올랐다.

영광스러운 200번째 챔피언은 고진영. 그는 부산에서 끝난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며 새로운 이정표의 주인공이 된 뒤 “행운의 결과”라고 말했다. 200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기까지는 숱한 동료 선후배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자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은 아니라는 의미로 들렸다.

200승 달성의 일등공신은 박세리(44)와 박인비(33)다. 박세리는 통산 25승을 올렸으며 박인비는 21승을 거뒀다. 한국 선수 가운데 20승 고지를 돌파한 선수는 둘 뿐이다. 둘이 합한 우승 횟수는 200승 가운데 23%에 이른다. 단순한 숫자를 뛰어넘어 한국 골프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다는 평가다.

한국 골프의 레전드 박세리가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국 골프 선수라는 게 자랑스럽다.”
한국 골프의 투톱으로 불리는 박세리와 박인비는 누구보다 200승 달성 소식을 반겼다.

은퇴 후 왕성한 방송활동으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세리는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 승수가 200승이라는 건 대단한 성과다.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젤로 크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선수들이 줄줄이 은퇴하는 가운데도 올해 1승을 올린 박인비 역시 “한국 골프 선수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10%를 차지한 데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런 길을 만들어 주신 선배님들, 골프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 인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골프가 LPGA투어에서 첫 승을 거둔 건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의 일로 고 구옥희 프로가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신고했다. 그 후로 박세리가 1998년 LPGA투어에 데뷔할 때까지 한국 선수는 LPGA투어에서 3승을 거뒀다. 박세리 미국 진출로 우승 사냥에도 큰 물줄기가 열렸다.

LPGA투어 신인 시절 박세리는 시즌 초반 국내에 ‘소환’될 위기에 몰렸다.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삼성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1998년 5월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며 대반전을 일으켰다. 그해 7월에는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한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펼쳐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됐다. 보기, 버디는 몰라도 박세리는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부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불리던 골프 저변이 확대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커리어그랜드슬램, 올림픽 금메달 등 각종 금자탑을 쌓은 박인비. 동아일보 DB


박인비는 그런 박세리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세리키즈’의 선두주자였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난 그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대회 최연소(19세 11개월) 우승 기록을 세우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샷을 날린 끝에 우승한 바로 그 대회에서 10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섰다. “PAK(박세리)의 자리를 PARK(박인비)가 대신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은 박인비의 US여자오픈 정상 등극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 골프가 LPGA투어에서 100승을 찍은 건 2012년 유소연이다. 첫 승부터 24년이 걸린 셈이지만 박세리 등장부터 따진다면 4승부터 100승까지 14년이 걸렸다. 101승부터 200승까지는 9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양희영, 박인비, 박세리 감독, 김세영, 전인지(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동아일보 DB


●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골프 성공에 기여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다고 한다. 박세리와 박인비는 세대를 달리 하며 한국 골프를 이끌었다. ‘두 선수 가운데 최고는 누굴까’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미국 골프채널은 지난해 박인비가 박세리의 뒤를 이어 20승을 올렸을 때 비슷한 주제의 기사를 다룬 적도 있다. 골프채널은 “한국에서 최고의 골퍼를 가리는 건 케냐에서 최고의 마라토너, 네덜란드에서 최고의 스피드스케이터를 가리는 것처럼 어렵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박세리와 박인비는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골프의 성공에 기여했기 때문에 그 둘을 비교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마치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중 누가 위대한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박세리는 여자 골프 대표팀 감독으로, 박인비는 선수로 출전했다. 박인비가 금메달을 딴 모습을 보던 박세리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 껴안기도 했다.

박세리는 골프 불모지라는 한국을 세계 정상의 반열로 이끈 개척자로 꼽힌다. 한국을 뛰어 넘어 일본, 태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도 골프 열기를 지폈다.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교포들도 박세리 영향으로 일찍부터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금메달을 딴 박인비. 동아일보 DB


박세리가 25승 가운데 5승이 메이저 타이틀인 반면 박인비는 21승 가운데 7승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채웠다. 박세리가 못한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완성했다. 게다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국민 영웅이 됐다. 2013년 박인비가 올린 6승은 한국 선수의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이다.

통산 상금에서 박인비는 290개 대회에서 1785만 달러를 기록해 박세리(365개 대회, 1258만 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다. 박인비가 통산 상금 4위이고, 박세리는 9위다.

박세리는 육상을 하다가 뒤늦게 골프를 시작해 국내 프로 무대를 정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교과서적인 스윙으로 한때 한국 주니어 골프 선수들은 대부분 박세리 붕어빵이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박세리는 ‘한강의 기적’에 비유되는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인 성실의 대명사로 불린다. 골프대디의 희생과 헌신에 절실함에서 비롯된 본인의 부단한 노력과 성실이 큰 힘이 됐다.

박인비는 초등학교 때 유망주로 주목받다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주니어 대회 우승을 휩쓸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박인비는 선천적으로 손목이 약해 코킹을 거의 하지 않는 독특한 스윙을 지녔다.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후 4년 동안 LPGA투어에서 무관에 그쳐 골프를 관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약혼과 결혼을 통해 전성기를 맞았다. 한때 운동선수에게 연애는 금기어로 분류되던 시절도 있었다. 행복한 골프, 워라벨 등 박인비가 강조하던 철학은 후배들의 필드 밖 생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16년 은퇴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박세리. 동아일보 DB


●“후배들아 우리를 넘어다오.”
고진영이 9월 중순 이후 최근 5개 대회에서 우승 3회, 준우승 1회의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하기 전까지 한국 골프의 이번 시즌 LPGA투어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11년 만에 메이저대회 무승에 머물렀고, 도쿄 올림픽에서도 노메달이었다.

한국 골프가 LPGA투어에서 침체기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과거에는 골프 대회 때면 한국 선수들이 새벽에 맨 먼저 연습장 문을 열고 들어가고 밤에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고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누구 보다 열심히 하는 게 최고 장점이었다. 요즘은 다른 나라 선수들도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다. 유럽이나 아시아 선수들의 체격 조건은 한국 선수들을 압도해 체력이나 샷 거리에서 밀릴 때가 많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힘들고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한 LPGA투어 진출을 꺼리는 풍토도 조성됐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한국여자골프 두 선구자들이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두선수들과 같은 도전정신도 대를 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국제경쟁력을 잃은 프로스포츠는 국내에서도 입지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국민 스포츠라는 프로야구는 도쿄 올림픽에서 졸전 끝에 4위에 그친 뒤 인기가 더 떨어졌다. 정규시즌 막판 순위 경쟁이 한창인데도 TV 시청률은 전반기보다도 줄었다.

박인비는 “앞으로 300승, 400승까지도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한국 선수가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후배들을 향한 바람을 전했다. 박세리 역시 “더 많은 선수들이 지금 선배 프로들을 보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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