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에 ‘2세 경영’은 없다…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것”[최영해의 THE 이노베이터]

최영해기자

입력 2021-10-24 09:00:00 수정 2021-10-25 15:03:58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단독 인터뷰]
朴, “재벌 세습경영, 세대교체 때마다 활력은 장점”
“과감한 세대교체가 조직의 역동성 불러”
조직 노화 방지 위해 대표이사 정년제 도입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2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향후 미래에셋 경영에 ‘오너 2세’ 경영은 없다”며 “다만 주식지분을 물려줘 이사회에서 중대한 경영 의사결정에는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동아일보DB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조직의 동맥경화를 막기 위해 대표이사들에 대해서도 정년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창업주인 박 회장 은퇴 후를 대비해 미래에셋금융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조직을 한층 젊게 가져가겠다는 포석이다. 박 회장의 세 자녀들은 현재 미래에셋에 근무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너 경영’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른바 한국 재벌의 등식인 2세 경영, 3세 경영이 미래에셋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박 회장은 21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 같은 미래에셋 경영 후계구도의 청사진을 밝혔다.


“자녀들은 하고 싶은 일 하게 내버려둬, 지분으로 이사회 참여”
1958년생으로 올해 나이 63세인 박 회장은 오랫동안 미래에셋의 경영 구도를 고민해왔다. 슬하에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둔 박 회장은 자식들에게 주식 지분은 물려줄 계획이지만 미래에셋의 경영 일선에는 참여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대주주 자격으로 경영권은 갖겠지만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두 딸과 아들은 회사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선에서 머물 것”이라며 “세 아이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했으며,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첫 딸인 하민 씨는 지난 6월 미국 유학 시절 만난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 전공 연구원 겸 교수와 결혼해 미 서부에서 생활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사학과를 졸업한 하민 씨는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마쳤으며 글로벌 컨설팅회사 매킨지에서 인턴을 한 뒤 미래에셋에서는 사원으로 부동산투자 업무를 하면서 2년가량 근무한 경력이 있다. 지금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벤처캐피털 회사에 취직해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둘째 은민 씨는 아직 학생으로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MBA 과정에 모두 합격해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준범 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 뒤 금융업과는 무관한 국내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게임에 관심이 많아 창업을 하거나 기업 인수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좋다”면서 굳이 미래에셋 경영에는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강조해왔다. 다만 자녀들이 상속받은 지분을 보유하면서 회사 이사회에 참석하는 방식에 국한해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매달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 두 세 차례 열리는 확대이사회에 대주주 자격으로 참여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 창립 4반세기, 39세에 창업해 어느덧 60대
박현주 회장은 39세 때인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해 내년이면 회사 창립 25주년을 맞게 된다. 박 회장은 “100년 기업으로 일구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동아일보DB
미래에셋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인 1997년 박 회장이 미래에셋캐피탈로 창업한 것이 모태(母胎)로 올해 창립 24주년을 맞았다. 내년이면 창립 4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만 39세에 창업한 박 회장은 어느덧 60대에 들어서 있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대기업 서열로 미래에셋은 20위에 올라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계열사가 38개에, 자산 규모가 19조3330억원에 달한다. 금융회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20대 그룹 안에 들어 있다.

창업 멤버였던 최현만 수석 부회장이 1961년생이고, 최경주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1962년생이다. 하만덕 미래에셋생명 부회장이 1959년생, 조웅기 미래에셋대우 부회장은 1963년생이다. 미래에셋캐피탈 창업 당시 30대였던 이들이 이젠 60세 언저리의 고령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8월 서울 을지로 미래에셋 본사가 있는 센터원빌딩 35층에 있던 회장 집무실을 뺐다. 이 공간은 현재 최현만 수석부회장이 사용하고 있다.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에만 참여하는 박 회장은 글로벌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금융산업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명함에는 직함이 미래에셋 글로벌투자(GI)전략가로 돼 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은 앞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며 “여느 재벌그룹처럼 2세, 3세로 물려주는 오너의 세습경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청년들과 샐러리맨의 꿈인 ‘사장’을 미래에셋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많은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미래에셋의 CEO(최고영영자)가 되는 길을 활짝 열어놓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래에셋은 전문 경영인을 조기에 발굴해 육성하는 후계 프로그램을 수년 전부터 가동하고 있다. 최경주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 CEO들은 매년 자신을 대체할 인적 자산으로 누가 있는지를 박 회장에게 추천해야 한다”며 “차세대 CEO를 발굴 및 관리,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 속하는 인재들은 전문교육의 기회도 갖는다”고 밝혔다.


“전문경영인 체제, 오히려 조직 동맥경화 우려”
장성한 박 회장의 세 자녀들은 현재 모두 미래에셋에 근무하지 않고 벤처캐피탈리스트와 학업, 중견 기업에 근무하면서 자신의 인생행로를 각각 걷고 있다. 박 회장은 “한국 재벌의 오너 경영은 세대교체 때마다 큰 활력을 얻는 장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동아일보DB
박 회장은 미래에셋의 후계 구도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조직이 활력을 잃지 않도록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박 회장은 “한국의 재벌 체제가 2세에 이어 3세, 4세에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데는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조직의 활력을 불러일으킨 것이 유효했기 때문”이라며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경영권이 넘어갈 즈음에 아버지를 보좌한 많은 참모들이 함께 물러난 것이 오히려 조직의 역동성을 고취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재벌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더욱 공고화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오너 회장이 나이가 들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경우 그를 보좌한 많은 참모들이 ‘나도 집에 갈 시간이 됐구나’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고, 후계 구도가 정착되면서 ‘젊은 피’들이 자동적으로 수혈되는 것은 재벌 체제의 선순환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대기업의 경우 나이가 많은 전문경영인이 오랫동안 자리를 고수하려고 하면서 오히려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노쇠해지는 경향이 뚜렷했다고 지적했다. 노욕(老慾)에 사로잡힌 ‘전문경영인 역설(paradox)’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모델이 돼 있는 국내 한 제약회사의 경우 연로한 분들이 오래 자리를 지키면서 조직이 경직되고 젊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도 눈에 띈다”며 경영학에서의 이른바 주주의 ‘대리인비용(agency cost)’이 막대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경영학에서 마치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 경영과 오너 경영은 각각 장단점이 공존하며 한국에서 소유 경영이 괄목한 만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좋은 점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재벌의 오너 경영에서 눈여겨 본 것은 다음 세대로 경영권이 넘어갈 때마다 과감한 인적 교체로 젊은 피가 조직에 수혈된 것이 다음 체제를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조직에서 연로한 ‘꼰대’들이 사라지면서 후대 오너 경영인들의 운신 폭이 넓어지도록 길을 터준 것은 대단한 강점이었다고 보고 있다.


“임원도 나이 많으면 물러나도록 장치 강구할 것”
후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은 해마다 CEO들이 자신을 대체할 인재 명단을 박 회장에게 제출한다. 박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위임하면 오너가 부재한 상황에서 고령에도 자리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 임원들에게도 정년 제도를 도입해 세대교체가 선순환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동아일보DB
박 회장은 구체적인 은퇴 시기는 정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미래에셋의 경영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지를 고민해왔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면서 샐러리맨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도 조직이 노화되지 않도록 하고, 지나친 대리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구도가 박 회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경영 시스템이다.

박 회장은 “한국 재벌 경영의 장점도 많지만 리스크 또한 만만치 않음을 재벌들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대기업을 꾸려가는 것은 수많은 법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며, 이런 위기는 오너 경영의 지속 가능성에 위협이 되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부 재벌 경영의 경우 세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녀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고액의 배당만 받으면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데도 오너 경영의 전선(戰線)에서 고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래서 박 회장이 생각해낸 것은 전문경영인에 대해서도 정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경우 전문경영인이 나이가 들어서도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을 자제할 수 없는 것이 약점”이라며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끄는 한국에서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처럼 임원에 대해서도 일정 나이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방안이 좋은 것 같다”면서 “미래에셋금융그룹의 회사정관에 이를 못 박아 시스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히려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역동성을 저해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임원의 나이 제한을 어느 선에서 정할지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1970년대 생의 임원 비율이 주류를 차지하는 등 세대교체가 활발한 편이다. 암묵적으로 최고경영자도 62세 부근을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대기업도 있다. 하지만 국내 어느 대기업에서도 임원에 대한 정년 제도를 채택한 곳은 아직 없다.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임원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짐을 싸야 하는 방식이다. 미래에셋의 임원정년제가 도입될 경우 국내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다. 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젊은 리더와 조직 문화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후계 구도의 핵심인 듯하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