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도 예술 되길…소멸 두려워하는 마음이 태도가 됐죠”

김태언 기자

입력 2021-10-21 14:08 수정 2021-10-21 14:2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쓸모없는사전
“제가 왜 종이를, 나무를 파낼까요? 고민해봤더니 저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낡아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더라고요. ‘아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계속해서 새기는 중이구나’ 깨달았어요.”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지은의 작품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예컨대 작품 ‘쓸모없는 사전’(2020년)이 그렇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백과사전에 집중했다. 사전마저 버리면 과거를 기억할 고리가 끊기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선물 받은 30권짜리 백과사전 중 제1권의 11쪽부터 640쪽까지 있는 모든 문항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칠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됐다.


생각 허물기
생각 허물기
이후 색칠한 문단 모양을 모티브로 해 육면체의 각 면을 깎아 9개 목조작품 ‘생각 허물기’를 만들었고, 그 목조작품의 모든 면을 종이에 대고 색칠해 54점의 프로타주 작품 ‘매만지고 문지르기’를 탄생시켰다.

주변에서는 모두 작가를 걱정했다. ‘왜 칠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작가는 “나도 모르겠어. 칠하고 싶고, 다 칠해야만 왜 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1권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그저 즐거웠다. 그럼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29권을 보고는 “나는 돈을 포기했나보다. 앞으로 29년간 갖고 놀 장난감 하나 생겨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난스레 웃었지만, 별 볼일 없는 현상을 관심 있게 보려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너 안에 나
너 안에 나
중노동 같아 보이는 작업 활동 속에서 작가 또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너’라는 한 글자를 81개의 서체로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 있다’가 그랬다. “보통은 마음에 드는 서체만 계속 쓴다. 다수가 싫어해도 단 한 명을 위해 남아있는 어떤 폰트도 있다. 작업을 위해 싫어하는 폰트로도 조각해봤는데, 문득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결국 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지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찮고 무의미하게 평가되던 것들의 가치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지은의 예술관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