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 ‘빚투’ CFD, 반대매매 급증

이상환 기자

입력 2021-10-21 03:00 수정 2021-10-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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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증거금만 있으면 ‘빚투’ 가능
연소득 1억이상 투자전문가 선호
주가급락으로 손실땐 강제처분
올해 4000억원대 육박해 ‘경고’
증거금 40% 상향에도 투자 늘듯


3월 미국 뉴욕 증시를 뒤흔들었던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황성국)의 아케고스캐피털에 대한 300억 달러(약 34조 원)대 주식 강제 처분은 차액결제거래(CFD)가 도화선의 하나로 작용했다. CFD는 증권사에 증거금만 맡기면 주식을 실제 보유하지 않고도 가격 변동에 따라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장외파생상품이다.

국내에서도 CFD가 고액 자산가의 ‘빚투’(빚내서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시장 규모가 2년 새 3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최소 증거금 기준을 높이는 등 규제를 강화했지만 최근 증시가 요동치면서 CFD에서 이미 반대매매가 쏟아지고 있어 시장의 충격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CFD 계좌 잔액은 4조2864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말(1조2713억 원)과 비교하면 3.4배로 급증했다. CFD 계좌 잔액은 지난해 11월 처음 2조 원대를 넘어선 데 이어 한 달 만에 4조 원대까지 돌파해 4조 원대 중반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CFD 계좌를 가진 개인투자자도 2019년 말 823명에서 8월 말 현재 6배에 가까운 4720명으로 급증했다.

CFD는 증거금만 내면 증권사가 대신 주식을 매매해 차익은 투자자에게 주고 증권사는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다. 투자 위험이 커 금융투자상품 잔액이 5000만 원 이상이면서 연소득 1억 원 이상 등의 조건을 갖춘 ‘전문 투자자’만 거래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시 활황 속에 고액 자산가들이 CFD를 통해 대규모 레버리지 투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CFD의 최소 증거금 비율은 이달부터 기존 10%에서 40%로 높아졌다. 지난달까지 증거금 1억 원으로 10억 원어치까지 주식을 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거금 비율 상향으로 CFD 레버리지 효과가 10배에서 2.5배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수준”이라며 “전문 투자자 요건도 까다롭지 않아 CFD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FD 시장이 커지면서 지난해까지 7개 증권사가 CFD를 취급했지만 올 들어 삼성, NH투자, 메리츠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뛰어들어 수수료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CFD도 주가가 급락할 때 투자자가 증거금을 추가로 채워 넣지 못하면 증권사들이 주식을 강제 처분하는 반대매매에 나선다는 점이다. 빌 황도 이렇게 큰 손실을 봤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CFD 반대매매 규모는 3818억 원에 이른다. 올 들어 증시가 출렁이면서 지난해(1615억 원)의 2.3배 이상으로 늘었다.

단기간에 급증한 CFD 계좌에서 반대매매가 쏟아지면서 최근 국내 증시의 하락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지난달부터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CFD 반대매매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며 “CFD 반대 매물이 급증하면 주가 하락 폭을 더 키우고 반대매매가 또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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