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구성-연출-연기까지… 죽음의 골짜기 걷는 기분”

김기윤 기자

입력 2021-10-08 03:00 수정 2021-10-0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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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아카이브Ⅰ-자화상’으로 연극 무대 돌아온 배우 윤석화
30년전 세 대표작 명장면 엮어 안무-노래 더해 새롭게 재해석
20일부터 소극장 산울림서 공연… 손숙 등 유명배우 20명이 관객맞이
“앞으로 아카이브 도전 계속할 것… 배우의 변신은 무죄니까요”


4일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만난 윤석화가 자신의 첫 산울림 무대였던 ‘하나를 위한 이중주’, 임영웅 연출가와의 첫 작업이었던 ‘목소리’, 장기 공연의 신화를 이끌어낸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공연 포스터 앞에 섰다. 그는 “30대에 맡았던 역할을 60대에 다시 한다. 뇌가 흘러내릴 만큼 높은 집중력과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진짜 힘들어서 죽고 싶어요. 내가 왜 이 큰일을 벌이겠다고 했는지….”

배우 윤석화(65)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하소연에는 몇 달 내내 품고 있던 근심과 부담감이 짙게 묻어났다. 구성, 연출, 출연을 전부 도맡아 관객 앞에서 홀로 그려 나갈 그의 ‘자화상’에 대해 “해봤던 작품들이지만 채우고 고쳐 나갈 게 많다”며 너덜너덜해진 두툼한 대본을 보여줬다. 연기는 물론이고 그간 제작자, 연출가로 활동하며 공연엔 도가 튼 베테랑에게도 “관객과 동료들에게 항상 확인받고 싶다”는 열망엔 변함이 없었다. “연극은 참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연기 인생 46년을 맞은 윤석화가 그의 ‘연기 고향’인 소극장 산울림으로 돌아온다. 20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그가 산울림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엮은 아카이빙 공연 ‘윤석화 아카이브Ⅰ―자화상’로 관객과 만난다. 윤석화의 30대를 밝게 빛냈던 세 작품 ‘하나를 위한 이중주’(1988년) ‘목소리’(1989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년)를 엄선했다.

4일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만난 윤석화는 “다행스럽게 산울림에선 지금도 ‘젊은 연극’이 올라오고 있지만, 이를 꾸준히 유지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안다”며 “연극계 선배로서 산울림에 고마움을 표하고, 역사성을 되새길 방법을 고민하다 판을 벌였다”고 했다. 이어 “공연계가 어렵고 제작비가 부족하다 해도 저 혼자 들고 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짓일 줄 몰랐다.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이번 공연은 윤석화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세 작품의 명장면을 엮었다. 과거 공연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무, 노래를 곁들여 작품을 재해석했고, 그의 과거와 현재 연기 장면을 중첩해 보여주는 영상도 곁들인다.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 안에 완전히 다른 세 캐릭터를 밀도 있게 선보이는 셈.

실컷 넋두리를 늘어놨어도 밑줄이 잔뜩 그어진 대본을 넘기는 순간 그의 눈망울이 다시 빛났다. 특히 영국의 유명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가 집필해 산울림에서 세계 초연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리자 눈시울도 붉어졌다. 1992년 3월부터 약 9개월간 장기 공연의 신화를 써내려간 작품이다. 단 한 번의 암전 없이 90분 동안 윤석화가 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연기를 펼친다.

“기립박수가 흔치 않은 시대였어요. 어느 날 무대 제일 앞줄에서 휠체어를 탄 관객 한 분이 조금이라도 일어서려고 팔에 힘을 주고 들썩거리던 모습을 잊지 못해요.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늘 저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침체된 시기 “극장을 찾는 관객은 다 예뻐 보인다”는 그는 작은 이벤트도 기획 중이다. “가진 재산은 사람뿐”이라며 원로인 박정자 손숙부터 박상원 최정원 전수경 배해선 송일국 이종혁 박건형 박해수 등 배우 20여 명에게 산울림의 일일 하우스 매니저를 부탁했다. 이들이 공연 시작 전 직접 책자를 관객에게 나눠주고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예정이다. “유명 배우들 덕분에 제 부족한 연기도 조금은 상쇄될 것 같다”며 웃었다.

산울림에서 이번 공연을 마치면 윤석화는 서울 예술의전당, 대학로에서 다른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아카이브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옛 기억을 되살려 내는 것보단 끝없는 도전에 목말라 있는 듯했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니까요.” 전석 4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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