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이상파랑’위에 올라타야 더 높이 도약 가능”

이규열 기자

입력 2021-10-06 03:00:00 수정 2021-10-06 03: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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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브릴 글로벌 퓨처리스트 인터뷰

조너선 브릴 글로벌 퓨처리스트는 팬데믹처럼 예측이 어렵고 충격이 큰 이상파랑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이전, 기업들이 감염병 유행의 위험 신호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대비했다면 어땠을까? 부가가치가 막대한 신사업 기회를 발견하지는 않았을까. HP(휼렛패커드)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업무를 담당했던 조너선 브릴 글로벌 퓨처리스트(사진)에 따르면 HP는 2015년부터 감염병이 발생할 확률이 증가할 것이라 예측하고 재택근무, 헬스케어 전용 제품 등을 준비하며 위기에 대비했다. HP의 올 2∼4월 분기 당기순이익은 12억28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61% 늘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며 노트북 시장이 호황을 누린 덕도 있지만 브릴 퓨처리스트는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거대한 위기와 기회를 예측하고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장기간 고민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브릴 퓨처리스트는 HP뿐 아니라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의 혁신 파트너로 활동한 바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월 1호(328호)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 전대미문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아
―HP는 어떻게 팬데믹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었나.

“기업의 기존 전략을 무력화할 정도로 충격이 큰 사건은 ‘이상파랑(rogue wave)’에 비유할 수 있다. 이상파랑은 여러 자연 현상이 맞물린 조건에서 돌발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대규모의 파도를 뜻한다. 그 파도 위에 올라탄 서퍼는 남들보다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다. 2015년 HP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디온 와이슬러는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이상파랑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퓨처 유닛(Future Unit)’을 창설했다.

퓨처 유닛은 2015년에 이미 전염병이 유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 세계 도시의 인구 밀도가 증가했고, 국가 간 여행은 활발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예측 결과에 따라 HP는 화상 및 원격 기술을 적용한 프린터 등 재택근무에 특화된 제품과 잦은 소독에도 부식되지 않는 디스플레이, 환자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강화한 컴퓨터 등 헬스케어 전용 제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본격화되고서는 이 제품들에 자원과 역량을 더욱 집중했다.”


―퓨처 유닛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퓨처 유닛은 향후 10년간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기술, 경제, 사회적 동향을 추적하고, 리더들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한다. 이들은 신기술, 글로벌 시장, 부동산 투자 등 분야의 제한 없이 연구를 진행한다. HP도 퓨처 유닛의 예측에 따라 준비한 결과 팬데믹이 시작된 지 1년 반 이상이 지난 시점에는 재무성과를 회복할 수 있었고 헬스케어 사업 역시 본격적으로 전개될 모멘텀을 얻었다.”


―미래의 위기를 혁신의 계기로 삼는 방법은 무엇인가.

“HP같이 이상파랑을 적극 활용하는 기업의 공통적인 특징을 정리해 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세 단계의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첫 번째는 ‘인지(Awareness)’ 단계다. 사람들에게 미래에 거대한 사건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퓨처 유닛은 경영진과 이사회에 미래의 위험과 기회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두 번째는 ‘행동(Behavior)’ 단계다. 모든 관리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능력을 갖춰야 한다. 퓨처 유닛은 핵심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리더들이 팬데믹을 포함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요인들을 고려하도록 적극적으로 코치했다. 세 번째는 ‘문화(Culture)’ 단계다. 직원들이 장기적인 성장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설계하고, 각각의 직원이 어떤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 이상파랑은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
―코로나19 이후 어떤 이상파랑이 닥칠 것으로 예상하는가.

“특히 우려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인도와 중국에서 자원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 경제에 긴장이 유발될 것이다. 특히 데이터 및 보안 분야의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바이오테크와 인공지능(AI)은 변혁적인 혁신 기술이다. 만약 이 기술들이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면 고령화로 인한 경제 성장 둔화를 막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규제 당국이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예상을 뛰어넘어 수조 달러 규모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기업이 이상파랑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리더는 이상파랑을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벌어질지 모르는 내일의 일보다는 이미 벌어진 어제의 데이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전 미국의 10개 기업 가운데 8개 기업의 리더는 감염병을 위험으로 식별하지 못했다. 심지어 우한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도 이들은 코로나19가 전 세계 비즈니스를 망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짜 문제는 이상파랑을 마주칠 확률이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20세기 동안 매년 평균 네 차례의 충격이 미국 기업을 강타했다. 하나의 충격에서 회복되기 이전에 새로운 충격이 닥치기도 했다. 팬데믹 사태로 인류는 지구 한편에서 시작된 충격이 지구 반대편에까지 막대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전 세계는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인류는 더 빈번하게 이상파랑을 마주할 것이다.”

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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