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눈치 보다가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 통합항공사 기업결합심사 잣대 명확해야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21-10-05 06:00 수정 2021-10-05 06: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지지부진
공정위 등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지체
업계 “항공 산업 전체 경쟁력 저하 우려”
이동걸 산은 회장 “해외 눈치 보는 공정위 유감”
최근 공정위 통합항공사 슬롯 재조정 요구
업계 “슬롯 재조정 시 사업 축소로 고용 불안 촉발”
‘항공 산업 발전·소비자 혜택’ 중점 심사 이뤄져야


대한민국 통합항공사 출범 시계가 늦춰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업결합심사가 지지부진한 탓이다. 올해 기업결합심사를 완료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기업결합심사가 지연될수록 국내 항공 산업의 어려움은 배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재무상태를 독자적으로 정상화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작년 말 대한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기업결합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현 상황이 대한민국 항공 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 기업결합심사 지체로 늦어지는 통합항공사 출범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기업결합승인 지연 등 거래선행조건 미충족으로 신주인수계약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예정일자를 기존 9월 30일에서 오는 12월 31일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인수계약 초기 예상됐던 6월 30일에서 6개월 미뤄진 것이다. 기업결합심사 완료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인수하는 선결조건이다. 기업결합심사가 완료돼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인수할 수 있고 자회사로 운영할 수 있다.

현재 대한항공 기업결합심사는 필수 신고국인 9개국 중 터키와 대만, 태국 등 3개 국가에서 종결됐다. 국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베트남 등 6개국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임의 신고국인 5개국 중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 등 3개 국가 승인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공정위 승인 여부는 가장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기업이 속한 국가 경쟁당국 승인 여부는 다른 국가 승인 여부 판단의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 “공정위 해외 경쟁당국 눈치만”… 항공 산업 글로벌 경쟁력 저하 우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는 사실상 해외 경쟁당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공정위는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심사 장기화에 대한 설명자료’를 통해 해외 경쟁당국 일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중복노선에 대해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여기에 과거 사례를 감안해 무조건 승인은 어렵고 일부 조건을 달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공정위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항공사 합병의 경우 기업결합심사를 위해 국내외 경쟁당국 뿐 아니라 교통당국 간 합의가 필요하다며 현 상황에서 기업결합심사 결과가 나올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공정위의 이 같은 반응에 의구심을 표한다. 해외 경쟁당국이 이번 통합에 대해 중점적으로 보는 사안은 자국 항공사와 자국 소비자들에 미치는 영향이다. 대한민국 내 항공 산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경쟁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살피고 승인 시기를 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외국 경쟁당국의 조건부 승인 잣대가 통합항공사 경쟁력을 저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정위가 소비자 편익 부분이나 경쟁제한 여부를 명확히 해석해 선제적으로 승인을 한다면 통합항공사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는 해외 경쟁당국의 조건부 승인을 막아내는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 입장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이 회장은 “항공 산업은 국내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 간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공정위가 앞장서서 해외 경쟁당국을 설득해주면 좋겠는데 오히려 다른 국가 조치를 보고 판단하려는 모습이라 섭섭하고 유갑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항공사 통합은 대한민국 항공 산업 생존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조치”라며 “시장과 산업 관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핵심 쟁점 ‘항공 산업 생존·고용 유지’… “경쟁력 유지 필수”
최근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가 인수·합병 후 시간대별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권리인 슬롯(Slot)을 반납하거나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라는 평가다. 지난 2019년 인천국제공항 4단계 건설사업 계획에 따르면 인천공항은 오는 2024년까지 제4활주로 건설과 계류장 확장, 관제인원 확대 등을 토대로 시간당 출·도착 슬롯을 최대 107회까지 늘릴 예정이다.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사업자에게 슬롯을 우선 배분하는 원칙도 있다. 이는 다른 항공사들이 인천공항에 취항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가 이미 갖춰졌기 때문에 경쟁제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천공항 슬롯을 합친 점유율은 40%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해외 주요 항공사들의 자국 공항 슬롯 점유율 비중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경쟁제한의 잣대로 슬롯 재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항공 산업에 대한 이해와 국내 공항 슬롯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하게 해외 사례를 차용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항공업계에서는 슬롯 재배치가 통합항공사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외국 항공사들이 대한민국 항공시장 장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정부 부처가 스스로 제한을 둬 국적 항공사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통합항공사 주요 쟁점 중 하나가 고용 유지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고용 유지는 두 항공사 통합 과정에서 주요 지향점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 요구에 따라 슬롯을 재조정하거나 회수하면 항공편 운항 감소와 사업 축소로 이어져 결국 고용 유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해외 경쟁당국 기업결합심사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고용 유지 여부는 관심사 밖이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 국내 기업 경쟁력 제고와 국민 일자리 유지는 중요한 문제다. 공정위가 수만 명의 일자리가 걸려 있는 이번 통합을 단순히 경쟁제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외국 경쟁당국 눈치를 보다가 국적 항공사 경쟁력이 저하되면 결과적으로 국내 근로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게 된다”며 “공정위의 통합항공사 기업결합심사 승인 절차가 대한민국 항공 산업 발전과 소비자 혜택 제고를 위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