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뿔소·퍼펙트 스톰·악어 입”…경제수장들 마저 섬뜩한 경고

뉴스1

입력 2021-10-02 08:12 수정 2021-10-02 08:13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뉴스1 자료사진 © News1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할 수 있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와 같은 위험 요인들은 확실하고 선제적으로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30일 주재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등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이 한자리에 모인 날, 심상치 않은 나라 안팎의 경제 위기 상황을 ‘회색 코뿔소’에 비유한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멀리서 풀을 뜯는 코뿔소가 날렵하고 날카로운 뿔을 가진 위험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외면했다가 빠르게 돌진해 오면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다.

“한계기업·자영업자 부실 확대 가능성, 거품 우려가 제기되는 자산의 가격조정 등 다양한 리스크가 일시에 몰려오는 소위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지난달 6일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취임사에 등장한 ‘퍼펙트 스톰’ 용어도 관심을 받았다. 태풍 자체는 위력이 크지 않은데 또 다른 자연현상과 충돌했을 때 폭발력이 커지는 현상을 퍼펙트 스톰이라고 하는데, 최근 금융시장에 다양한 리스크가 한꺼번에 몰려온 상황을 빗대었다.

영화 ‘퍼펙트 스톰’의 한 장면. /뉴스1 자료사진 © 유튜브
20여일 후인 같은 달 28일 임원회의에서 정 원장은 다시 한번 부동산, 가상자산 불안 등 국내외 리스크를 언급하며 “퍼펙트 스톰이 생길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미래 세대의 부담인 국가 채무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정 지출의 불가역성을 경고한 일본의 ‘악어 입’ 그래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악어 입 그래프란 재정 지출은 늘고 세수가 줄면 국가 재정 그래프가 악어 입 모양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1977년 32%에서 2019년 220%로 폭증한 일본의 재정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거듭된 코로나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재정 지출이 늘고 국가채무가 급등하자 올해 첫 추경을 편성하던 때인 지난 2월 안일환 당시 기재부 2차관이 적자 재정 늪에 빠진 상황을 우려해 했던 발언이다.


3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금융당국 수장들이 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정은보 금융감독원 원장. 공개석상에서 이들 4개 기관 수장들이 모임을 갖는 것은 지난 2월18일 이후 약 7개월만이다. 2021.9.30/뉴스1DB
미증유의 팬데믹 위기 이후, 정부 당국에서 이처럼 동물·자연현상에 비유한 경고성 메시지를 띄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통상 보수적 관점으로 경제 진단을 하는 정부 당국이 위기 상황을 날 것 그대로 ‘직설’하기 보다 비유 용어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효과를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듣는 이에 따라 섬뜩한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한 비유 용어들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경고’하는 공통점이 있다.

대외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미국의 테이퍼링(점진적 양적 완화 축소)과 금리 인상, 중국 헝다그룹 파산 위기가 심상치 않고 국내에선 가계대출과 부동산 과열 등 금융 불안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해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소득하위 계층을 돕고 더 나아가 소비, 고용 등에 파급되는 ‘승수효과’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은 최근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여러 위험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자칫 1998년 IMF 외환 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달 안으로 내놓겠다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위기 해소 대책 중 하나지만 ‘퍼펙트 스톰’ ‘회색 코뿔소’ 표현처럼 대형 위기를 막을 해법은 대출 규제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학계 한 인사는 “정부가 장밋빛 낙관에 빠진 사이 미·중발(發) 악재에 국내 가계부채 문제, 생산·소비·투자 등 실물경제 악화 등이 복합적인 위기가 왔다”며 “단순히 가계부채 문제 대응에만 그치지 말고 복합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뉴스1)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