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로 돌아온 박찬욱 “영화와 달리 사진은 우연성에 기대죠”

부산=김태언 기자

입력 2021-10-01 16:59:00 수정 2021-10-01 20:47:54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영화감독 박찬욱(58)이 사진작가로 대중 앞에 섰다.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1일 개인전 ‘너의 표정’이 시작됐다. 이날 만난 박찬욱은 “영화인이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을 따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여럿이 함께한다는 점이 참 행복하지만, 한없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에 겁먹고 영화감독 일을 포기했죠. 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간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에 비해 사진은 참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요. 영화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인 것 같습니다.”

박찬욱은 영화보다 먼저 사진을 공부했다. 처음 손에 쥔 카메라는 아버지의 카메라였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는 차츰 사진을 손에 익혔다. 작품은 조금씩 세상에 공개됐다. 그는 2016년 영화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엮어 사진집 ‘아가씨 가까이’를 냈다. 이듬해부터는 서울 용산구 CGV 아트하우스 ‘박찬욱관’ 입구에 ‘범신론’이란 제목으로 넉 달마다 사진을 교체해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찍은 디지털 카메라 작품 30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첫 갤러리 개인전이다. 2019년 국제갤러리의 ‘오! 라이카, 오프 더 로드’ 사진전을 시작으로 인연을 맺어온 박찬욱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의 동생 박찬경 작가에 이어 국제갤러리 소속 작가로 합류했다. 전시 기간은 6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와도 시기가 맞아 팬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전시의 제목 ‘너의 표정’은 피사체의 표정을 의미한다. 박찬욱은 “관람자가 어떤 사진을 앞에 두고 섰을 때 그 사진 속 피사체와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그 사물의 표정, 그리고 그걸 보는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상상해보셨으면 한다”고 했다. 영국 런던 클럽에서 찍은 작품 ‘Face 188’(2017년)은 등받침에 요철 여러 개가 튀어나온 의자들이 죽 늘어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마치 공연 대기 중인 동료들이 긴장 속에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처럼 다가온다. 그는 “서로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속삭임 같은 게 귀에 들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소품 하나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박찬욱답게 사진에서도 여러 감각이 느껴진다. 박찬욱은 “영화를 만들 때 질감이 느껴지는 소품을 사용하려했기에 영화를 보다 그 소품이 나오면 냄새가 느껴진다. 사진에서도 질감이 느껴지는 소품들을 담았고 관람객도 이를 고스란히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 작품 ‘Washington, D.C.’(2013년)를 보면 벨벳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미국에서 영화 ‘박쥐’를 상영할 당시 관객과의 대화를 나눌 때 대기실에 놓였던 소파다. 그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소파의 벨벳이 자신을 더 환대해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가만히 작품을 바라보다보면 그의 카메라 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풍경, 정물이 전부다. 이것이 박찬욱에겐 세상과 교감하는 방식이다. 그는 “모든 사물을 초상사진 찍는 기분으로 찍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자 하지 않은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미의 범주를 반문한다”고 했다. 이어 “인물이 화면 안으로 들어와 만들어내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면서 아직까지는 사람의 표정은 찍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박찬욱에게 일종의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 사전계획을 철저히 세운 후 촬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우연성에 기댄다.

“이어폰을 끼고 크게 음악을 들으면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두리번거려요. 그러다 딱 마주치는 찰나의 만남,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누릅니다.”


하나의 피사체 앞에서 두 세 번 찍고 또 다른 만남을 찾아 떠나는 식이다. 그는 “의도화되고 복잡한 레이어를 가지고 있어 설명 가능한 것이 영화라면, 단순하고 독자적인 완결성이 있기에 보는 이들이 각자의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사진”이라며 “잠시 멈추어 바라본다면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9일까지.

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