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옥죄기에 실수요자 ‘돈맥경화’…“정부가 집값 올려놓고” 분통

뉴스1

입력 2021-09-27 17:31 수정 2021-09-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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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시내 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DB © News1

30대 초반인 서 모씨는 최근 급하게 돈이 필요해 카드론을 알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올해 초만 해도 한도가 4000만원까지 나왔는데, 몇달 전 2000만원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0원이 됐기 때문이다. 서씨는 “신용도에 변동이 없는데도 한도가 0원이 됐다”며 “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기가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오는 11월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구하던 김모씨(29)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전셋값은 계속 오르는데, 전세대출도 막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을 사고 싶었지만 여력이 안 돼 전셋집을 알아본 건데, 전세대출까지 조이니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을 잔뜩 올려놓고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며 “1년 전만 해도 집을 구하고 대출받는 게 이 정도로 어렵진 않았을 것 같은데, 결혼을 조금 서두를 걸 그랬나 후회가 들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해 9억원짜리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산 30대 후반의 이모씨는 내년 초 이사를 앞두고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 전세금 5억4000만원을 세입자에게 주려고 현재 이용 중인 전세자금대출 3억원을 주택담보대출 4억원으로 갈아탈 계획이었는데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로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는 조만간 연차휴가를 내고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도 찾아가 볼 계획이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전 금융권이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무주택 서민 등 실수요자들이 돈매경화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금융당국이 정교한 실수요자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대출총량 등 기계적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면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가계대출 급증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급등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실수요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자금 마련에 발등의 불이 떨어진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금융당국이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 대한 고강도 옥죄기에 나서면서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카드사 등 2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일제히 높아졌다. 금융당국은 은행 대출 규제가 카드 등 금융권 전반으로 풍선효과가 확산할 것을 우려해 2금융권에도 대출 총량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NH농협은행 등 일부 은행이 지난 8월말 대출 중단·축소에 나서자 금융권 전반에서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하나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8월 말 4.62%에서 이달 5.04%로 상승하면서 이미 당국의 권고치에 근접했다. KB국민은행의 경우도 이달 들어 대출이 급격히 늘면서 8월 말 3.62%에서 이달 중순 4.37%로 4%대에 진입했다. 8월 말 가계대출 증가율이 3.45%였던 우리은행도 이달 4%에 근접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27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10월초 나오는 가계부채 추가 대책으로 은행권의 대출 중단이 확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다른 은행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며 “그것은 은행 차원에서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또한 금융권의 가계부채 총량관리를 내년에도 적용하는 등 대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에선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중단 및 축소가 이뤄지고 있고 신용대출 한도는 연소득 100%까지 축소했으며 마이너스통장 한도도 5000만원 이내로 줄였다. 또 대출금리도 인상하고 신규 대출을 실행할 때도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은 29일부터 전세자금대출, 입주 잔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의 한도를 대폭 축소한다. 전세대출 한도는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고 집단대출 중 입주 잔금대출의 담보 기준도 KB시세나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뀌게 된다. 한도가 대폭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보증금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를 경우 지금까지는 전세대출이 없는 세입자는 전세값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증액분인 2억원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2금융권도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어난 카드론 추이를 모니터링하며 업계에 속도 조절을 당부해왔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대출이 많이 늘어난 현대카드와 롯데카드에 가계대출 총량 지침을 준수하라고 당부했다. 카드업계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치는 5~6%인데, 2개사는 대출 목표치를 2배 이상 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사들도 카드론 금리를 올리고 한도를 줄이는 등 조절에 나섰다. 카드론 한도·금리 심사 과정에서 차주별 DSR도 고려하거나,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가 큰 20대에 대해서는 카드론 한도를 줄인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지난 2분기 카드론 신규취급액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올해 2분기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13조169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4256억원 줄었다.

7개 카드사의 카드론 신규취급액은 지난해 2분기 10조9435억원에서 지난 1분기 13조4425억원까지 3분기 연속 증가한 바 있다. 지난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카드론 신규취급액은 9조2855억원으로 집계돼 3분기에도 감소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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