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위한 민간임대도 투기 광풍… “자고 일어나면 억대 웃돈”

최동수 기자

입력 2021-09-15 03:00 수정 2021-09-1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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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곳서 분양 ‘임차권 전매 단지’, 거래해도 세금없고 다주택도 가능
전국서 투자자 몰려 경쟁률 199대1… 임차권 사고팔며 프리미엄 치솟아
“차익노린 투기수요로 가격 급등… 정작 필요한 무주택 실수요자 피해”



“자고 일어나면 ‘임차권’에 프리미엄이 붙어요. 사람들이 전국에서 옵니다.”

13일 오후 2시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A민간임대아파트 건설현장 인근 공인중개업소에서 만난 김모 씨(50)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이 단지는 8년 임대 후 분양 전환하는 1766채 규모의 민간임대아파트로 지난해 7월 분양했다. 입주자로 선정된 임차인은 8년 동안 전세로 살다가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 즉 임차권을 받는다. 아파트 공급난이 심해지자 이 임차권을 사려는 수요가 폭증했고 이례적인 프리미엄이 붙고 있다. 현재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m² 임차권 프리미엄(웃돈)은 4억 원에 이른다고 중개업소는 전했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위한 민간임대아파트에 가수요가 붙고 있다. 민간임대에 살지도 않을 사람들이 임차권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웃돈이 붙으면서 정작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이 주택 수 계산에서 빠져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시세차익을 노린 사람들이 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 세금 없는 임차권에 차익 노린 투기 수요 가세

14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전국에서 분양한 민간임대아파트 19곳 가운데 임차권 전매가 가능한 9곳의 평균 경쟁률이 199 대 1을 나타냈다. 평균 지원자 수는 14만5082명에 달했다. 투자자가 몰리며 단지별로 임차권 프리미엄은 200만 원에서 3억 원까지 형성돼 있다.

일선 중개업소 관계자는 “거주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임차권을 일단 사놓고 입주 전에 프리미엄만 받고 팔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사람들끼리 매매가 이뤄지다 뒤늦게 실수요자까지 뛰어들며 올해만 웃돈이 2억 원 넘게 붙었다”고 전했다.

시세차익을 노린 사람들 사이에서 민간임대가 주목받은 건 지난해부터다. 연이은 규제지역 선정과 다주택 규제로 아파트 살 길이 막히자 인터넷 카페나 오픈카톡방에 ‘민간임대주택은 세금 규제 없다’ ‘다주택자 투자 가능하다’ 등의 글이 올라오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 가격 급등하며 무주택 실수요자만 피해
올해 투기 수요가 몰린 9개 지역의 임대물량은 ‘장기 일반 민간임대주택’이다. 무주택자만 지원할 수 있고 임차권 전매를 막은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자격 요건, 임차권 전매, 분양 전환 여부 등을 민간 건설사가 정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사업의 주체인 민간 건설사는 임차인 모집 흥행을 위해 임차권 전매를 자유롭게 하거나 분양 전환 우선권을 부여하다 보니 웃돈이 붙는 것이다.

지난해 8월 10만5000명이 몰린 충북 청주의 한 민간임대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지난해 다주택자 등이 3, 4명씩 몰려와 임차권을 매수했다”며 “매수자들끼리 손바뀜이 꽤 됐다”고 했다.

임차권은 주택이 아니고, 임차해서 살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사고팔 때 취득세와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예컨대 임차권을 5000만 원에 사서 1억 원에 팔았을 때 취득세나 양도세 모두 없는 것이다. 청약통장을 쓰지 않고, 거주지역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는 등 자격 요건도 까다롭지 않다.

전문가들은 민간임대아파트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건 공급 부족이 만들어낸 현상이라며,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일반 분양 등 일반 주택 시장에서 매물이 부족하니 민간임대아파트까지 너도나도 몰려가 묻지 마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사고팔며 프리미엄이 높아지면서 정작 필요한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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