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조용기 목사가 한국 개신교계에 남긴 족적들

뉴스1

입력 2021-09-14 10:52:00 수정 2021-09-14 10: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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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용기 목사 © 뉴스1

고(故) 조용기 목사는 향년 86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해 한국 개신교 선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개선과 취약계층을 돕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 5월18일 서대문구(현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했던 최자실 전도사의 집 거실에서 가정예배의 형태로 창립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최자실 전도사는 훗날 조용기 목사의 장모가 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후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 서대문 순복음부흥회관(1961년)을 거쳐 1973년 현재의 여의도로 이전했다. 이 교회는 1979년 신자 수 10만명, 1981년 20만명, 1984년 40만명, 1992년 70만명을 잇따라 돌파하며 세계 최대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 모델은 신자 수 증가의 비결이었다. 이 모델은 조용기 목사가 과로로 인해 혼자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울 지역을 20개 구역으로 분할한 후 평신도 여성들을 구역장으로 임명해 구역 모임을 이끌게 한 것이 출발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 대규모 성회를 인도하고 강력한 성령운동이 전개됐다.

또한 취약계층을 돕는 다양한 사업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영산조용기자선재단은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외국인근로자 등 취약계층을 경제적·의료적으로 돕는 행복나눔운동을 다양하게 전개했다.

조 목사는 국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에도 헌신했다. 그는 1988년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해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으며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앞장섰다.

고인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심장병원을 건립하자고 제안하자 적극 앞장섰다. 그는 2007년 6월 개성을 방문해, 약 20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에 280병상을 갖춘 심장병원을 평양에 짓기로 했다. 그러나 병원 건립 중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건축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고 조용기 목사의 삶에는 기적에 가까운 성과 뒤편에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그는 2008년 5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직에 물러났지만, 교회 사유화와 비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당시 대형교회 설립자들이 담임직을 자식에게 세습해주는 상황에서 고인이 당회장을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주자 세간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막후에서 교회의 전권을 행사하고 가족들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29명이 2011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고인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주식 투자에 수백억원을 사용하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이 확정되기도 했다.

한편 조용기 목사가 14일 아침 7시13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 조용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고 조용기 목사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마련되며 조문은 15일 오전 7시부터 가능하다. 천국환소예배(장례예배)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열리며,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설교한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장종현·이철·소강석 목사가 맡았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진행된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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