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세금, 아는 만큼 보인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09-12 07:00 수정 2021-09-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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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만의 세금 아니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가 말하는 절세 전략
상속 대책, 가족 위해 50대부터 세워야
인생 끝자락에 자산 남기지 않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


“내가 상속세 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3월 88세의 부친을 여읜 40대 A씨. 평소 근로소득세조차 내 본 적이 없던 그는 상속세로 1억 29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57)에 따르면 A씨의 부친이 2014년 4억 5000만 원에 산 아파트가 2018년 5억대가 되더니 2020년 8억 대, 2021년 들어 11억 원 대를 넘어서 있었다. 결국 상속세를 낼 여력이 없는 그는 아버지와 살던 이 집을 11억 2000만원에 팔기로 했다.

고 변호사는 부친이 1년 전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해 봤다. 당시 실거래가는 8억 원대였고 상속세는 4700만 원만 내면 됐다. 상속세를 계산할 때 아파트는 유사매매사례가액(상속 전후 6개월간 유사한 부동산의 실거래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또 A씨가 상속세를 낼 여력이 있었다면 부친의 사망시점인 3월 경 거래된 매매사례가액 10억 원으로 상속세 신고를 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상속세는 8600만 원만 내면 된다. A씨는 세금 낼 돈이 수중에 없었던 탓에 집을 팔아야 했고 그 매매가격이 시가가 되어 세금 4000여 만 원을 더 부담하게 된 셈이다.

고성춘 변호사는 상속세는 이제 서민도 걱정해야 하는 세금이 됐다고 말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경제규모 커졌는데 20년 전 과세기준 그대로
상속이라 하면 부자들만의 일로 여겨져 왔다. 아직은 맞는 말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사망자 30만5000여 명 중 1만181명에게 상속세가 부과됐다. 사망자 중 3.34%다. 결정세액은 4조 2294억 원이다.

그런데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매매실거래 평균가격을 보면 60-85㎡ 규모 아파트 평균가는 전국이 5억 8400만 원, 서울 13억 2900만 원이다(2021년 6월 현재). 올해 들어서는 매매가 뜸한 가운데 일단 거래되면 신고가를 경신하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재산 없이 아파트 한 채만 남기는 중산층도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상속세가 신고까지 6개월, 이후 국세청 조사기간까지 더하면 세액결정에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지난해와 올해 집값폭등 분은 아직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고성춘 변호사는 부동산가격 등 자산 가격 상승 탓에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들만의 세금이 아니게 됐다고 단언한다. 상속세 과세기준이 20년 전 그대로인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그 사이 경제규모가 커지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과세기준에는 인플레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 변동 심한 매매사례가액으로 상속가액 결정
A씨의 사례는 부동산 가격 급등이 상속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상속가액 계산에 매매사례가액을 적용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보여준다.

고성춘 조세전문 변호사 서울 송파구 문정동 사무실에서 고성춘 변호사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주택 세금정책의 문제점과 부모상속의 절세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상속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모든 정책이 세금을 늘리는 쪽으로 작동된다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게 존재의 이유입니다. 다만 갈수록 세수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고 있어요. 징세 과정에서도 납세자를 의심하고 부를 죄악시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세금 내는 국민이 세금이 징벌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딘가 잘못된 겁니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을 모두 합산해 과세한다. 배우자가 없으면 5억 원, 배우자가 있으면 10억~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된다. 이 액수를 넘기면 상속세가 발생하는데, 누진세율이 적용된다(표 참조).

대부분의 상속은 갑자기 닥친다. 준비해놓지 않으면 유족이 고생하게 된다.

“예컨대 상속세는 6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신고 납부해야 하는데 한국인이 남기는 재산의 70%가 부동산입니다. A씨처럼 유족이 따로 상속세를 낼 돈이 없다면 살던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 쉽지요. 잘 팔리지 않는 부동산은 헐값에 팔거나 경매에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생전 10년간 증여자산 추적해 상속세에 합산
더 큰 문제는 사망 전 10년 간 증여한 자산이 상속재산에 합산된다는 점이다.

“사망신고가 있으면 직전 10년 치 금융거래내역이 국세청에 통보됩니다. 국세청은 어느 정도 자산규모가 되는 사람 위주로 면밀한 조사에 들어가죠. 10년간 거래내역에서 수상한 돈의 움직임이 없었는지 추적합니다. 무신고 증여를 찾아 1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신고 증여가 발견되면 10년 이내 액수는 상속가액에 포함되고 증여세는 15년 전 것까지 부과된다. 사망자의 재산에서 어디에 썼는지 모르는 뭉칫돈이 빠져나갔다면 상속재산으로 간주한다. 다만 사망 전 1년간 2억 혹은 2년 간 5억 원까지는 문제 삼지 않는다.

조세전문 고성춘 변호사.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세법에서는 특수관계자 간 재산적 법률행위는 모두 증여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가족 간 계좌이체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증여가 아니라는 걸 본인이 증명해야 하죠. 국세청의 자세는 ‘내 의심을 0으로 만들어보라’는 겁니다. 요즘은 모든 재화의 흐름이 전산화돼 있어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최근에는 법률요건을 모두 갖추어 증여를 했음에도 증여자금의 원천을 따지는 세무조사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사계가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한 병원장은 20대 직장인 아들의 주택구입자금으로 4억 원을 증여해주고 증여세까지 제대로 납부했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이 세무조사를 당했다. 주택취득자금을 조사한다는 명목이었는데 결국 소득세 탈루로 7억대 세금을 얻어맞고는 몸져누웠다고 한다. 고변호사는 이런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자산가 노인들 중 밤잠을 못 주무시는 분이 많다고 전한다.

“금융실명제 이전을 살아온 지금의 70~80대들은 부부간 ‘네 돈 내 돈’ 구분 없었고 자식들에게 보태주는 걸 당연시했습니다. 전세금이나 사업자금으로 몇 억 주고 증여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가산세까지 더해져 상속세가 어마어마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국가가 죽음의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유산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이 상속세”라고 말한다. 과거 증여나 소득세 등에서 세금 낼 것을 안내고 지나갔더라도 상속세 조사에서 모두 찾아내 가산세까지 물린다는 것이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 미리미리 정리해두고 떠나는 게 어른의 책임
-흔히 자녀들에게 끝까지 대접받으려면 재산은 죽을 때까지 놓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걸 충실히 이행한다면 재산을 자녀들 대신 국가에 헌납하는 결과가 되지요. 굳이 그때문이 아니어도 상속은 최소한 50대부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도 미리미리 정리해둬야 합니다.”

아무 대책 없이 상속을 맞게 돼 가족 간 다툼이 일어나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다. 특정 상속인에게 유산이 쏠리면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유류분(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분)반환청구를 통해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이 뛰다보니 싸움이 더 늘었습니다. 큰 아들에게 준 집이 3억 원일 때는 조용했는데, 그게 8억, 16억이 되니 형제들이 ‘내 몫을 떼어 달라’고 들고 일어서는 식이죠. 이걸 미리 정리해두는 게 어른의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유언장을 미리 써볼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절세의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주식은 가치가 낮아졌을 때 증여하고 △미래가치가 높은 부동산부터 증여한다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하고 △증여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조손에게 바로 증여한다 △기부를 고려한다.

“궁극의 절세는 상속할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겁니다. 살아생전 자녀와 배우자에게 골고루 증여하든 사회에 환원하든 자신을 위해 써버리든 말이죠. 세금은 그때그때 제대로 내는 게 가장 낫고요. 국가에 빼앗기느니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해 재단을 만드는 방법을 택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고변호사는 국세청에 채용된 변호사 1호였다. 5년간의 국세청 근무를 마치고는 세법 관련 책 6권을 저술했다. 이 책들은 조세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사례연구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조세는 ‘규제’ 아니라 ‘구제’의 마인드로
고성춘 변호사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초의 조세 전문변호사다.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별 채용돼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과장으로 일하며 법무와 조세소송을 지휘했다. 관행보다는 원칙,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풍토를 도입하려 애썼다.

2007년 말 국세청 퇴직 후에는 6개월간 절에 틀어박혀 세법 관련 책 6권을 저술했다. 국세청에서 다뤘던 조세소송 등의 판례와 핵심 법리 등을 쟁점별로 총정리한 그의 책은 조세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사례연구집으로 평가받는다.

“조세는 규제보다 구제의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법무과장 시절, 그는 조세불복사건 결재 책임자로서 부당과세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수많은 인용결정을 했다. “공직의 칼은 서민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잡는 데 쓰여야 합니다.”

조세전문 고성춘 변호사.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현재는 서울 송파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전공은 ‘조세불복’이다. 유튜브를 통해 ‘세금과 인생’이란 주제로 구독자들과 만난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국세청 내부 얘기부터 매일 상담을 통해 만나는 민간인들의 속사정들을 통해 얻게 된 지식과 통찰을 나누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근로자 중 소득세 안내는 사람이 40%에 달하다보니 세금을 남의 나라 얘기처럼 여기는 경향이 크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실 미국의 독립도, 프랑스 혁명도 세금 때문에 일어났다. 세금은 나라가 뒤집어지기도 하는 문제인 것이다. 국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자각은 얼마라도 세금을 내야 생겨난다.

○ 10년마다 증여, 자녀 종잣돈 만들어주기
세상사 모두 그러하듯 세금도 아는 만큼 보인다. 요즘 일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증여세를 적극 활용해 10년 단위 증여로 자녀의 종잣돈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가 유행하고 있다. 법을 알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증여세는 미성년자녀는 10년간 2000만원, 성인자녀는 10년간 5000만원까지 비과세다. 이를 이용해 자녀가 태어났을 때와 10세 때 각기 2000만원, 20세, 30세때 5000만원씩 증여하면 자녀가 30세가 됐을 때 모두 1억 4000만 원을 세금 한 푼 없이 마련해줄 수 있다. 다만 이때 세금은 내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증여세 신고는 해야 한다.

이를 응용하면 증여세의 누진세율이 10년마다 리셋되는 점을 이용해 최소한의 세금을 내면서 종잣돈을 키우는 방식도 있다. 예컨대 0세와 10세에 각기 5000만원씩을 증여하고 각 300만 원의 증여세를 낸다. 20세와 30세에는 1억씩 증여하고 각 500만원 씩 증여세를 낸다. 30세가 된 아이는 3억의 종잣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때까지 낸 세금은 모두 1600만원이다. 여기서는 물가상승률이나 기회비용은 계산에서 배제했다.

증여된 자금도 자녀명의로 우량 주식에 묻어두거나 장기투자상품에 투자해 증식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주식 계좌를 만들어줘 연습 삼아 증권투자를 시키며 금융교육을 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금융교육에 관한한 문맹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현상인 듯도 하다.
※ ‘100세 시대’,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요. ‘서영아의 100세 카페’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풍요로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 준비할 것, 생각해볼 것, 알아둘 것 등 다양한 메뉴로 찾아뵙겠습니다. 격주로 실리는 ‘이런 인생 2막’ 코너에서는 멋진 인생 2막을 만들었거나 준비하는 독자 사례를 소개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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