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저 수준 배당수익률, 한국 증시 이 꼴로 만들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경영학 박사

입력 2021-09-11 17:17 수정 2021-09-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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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의 투자 노트]
낮은 배당 탓 안정 수익 어려워… 한국 기업 배당 인색 이유는?



홍춘욱 박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지만 개인 투자자로서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재직 당시 주식투자가 금지됐던 그를 구원한 것은 달러 투자였다. 2016년 퇴직 후 환율 급상승기를 맞아 환차익을 실현하고 그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면서 2019년 조기 은퇴의 꿈도 이뤘다. *이 영상과 관련한 기사는 주간동아 1295호에 실렸습니다.

앞선 연재에서 1981년 이후 한국 주식시장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수익률 분포가 들쑥날쑥해 미래를 예측하기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특징은 40년간 통계로 확인했을 때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할 확률이 42.5%에 이른다는 점이다. 대체 왜 한국 주식시장은 이런 꼴이 됐을까.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필자는 배당수익률이 항상 낮았던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래프1’은 2000년 이후 회사채 금리와 배당수익률 추세를 보여준다. 금리 변화에 상관없이 배당수익률이 1%대를 유지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일한 예외는 2008년. 이때는 배당수익률의 분모에 해당하는 주가가 급락한 탓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1996년

11월 15일 ‘한국경제’에 실린 ‘한국 배당수익률 1.2%로 세계 33위… 증권거래소 조사’ 기사에 따르면 세계 주요 주식시장 36곳 중 배당수익률 기준으로 한국은 33위에 그쳤다. 세계 최저 수준의 배당수익률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셈이다.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정보시스템, EAR리서치 계산



낮은 배당, 한국 증시 변동성 높이는 결정적 요소

배당수익률이 낮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가 기업 이익이 늘어나고 성장하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을 갖기 쉽다는 점이다. 빠르게 성장하고 또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결국 ‘기업 성장이 주가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 덕분 아닐까. 그런데 이익이 늘어나도 배당에 인색하다면 이 회사에 투자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기업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고, 시장에서 부각되는 테마와 이 회사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지 등에 관심을 더 가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배당은 주식시장이 붕괴할 때 ‘저가매수’ 기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A기업 주가가 1만 원이고 연간 200원 배당을 지급한다고 가정해보자. A기업 주식의 배당수익률은 2%이다. 그런데 만일 투자자들이 A기업은 불황이 오더라도 200원 배당을 유지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주가 폭락은 저가매수 기회로 활용될 것이다. A기업 주가가 5000원으로 떨어질 때 배당수익률은 4%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정도 배당수익률이면 웬만한 회사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며, 만일 여기서 주가가 더 내린다면 배당 투자의 매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수년 전 한 기관에 근무할 당시 ‘리스크 관리 위원회’에 불려간 적 있다. 투자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최고책임자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홍 박사, 이 주식을 왜 샀어요? 주가가 계속 빠지는데 말입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 회사는 안정적인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이기에 주가가 빠질수록 배당수익률이 높아집니다. 장기투자기관으로서 배당을 지급하는 우량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때 매수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이 말을 들은 상사는 더는 해당 주식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 기업이 배당을 전혀 지급하지 않거나, 배당을 자주 중단한 기업이라면 어땠을까. 투자 실패를 질책받고 손절매(loss-cut), 즉 주가의 비정상적 급락에 매도로 대응하라는 지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게 배당의 힘이다. 연기금 같은 장기투자자는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에 장기투자하고 배당을 재투자함으로써 복리 성과를 얻으려는 인센티브를 가진다.

결국 한국 기업의 인색한 배당은 주식시장 변동성을 높이는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기업의 ‘장기적 성과’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데다,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의 저가매수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다.

끝없는 투자 경쟁, 파산 위험 앞에서 현금 보유 선택
이 대목에서 한국 기업이 배당에 인색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할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직접적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 같은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하려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투자 성과는 2~3년 뒤에나 드러날 뿐 아니라, 한 번 투자된 자본재는 대부분 10년 이상 기대수명을 지닌 내구재라는 특성을 가진다(‘한번은 경제 공부’/ 로버트 하일브로너·레스터 서로 지음/ 142~143쪽). 따라서 한국 기업은 투자에 한 번 실패하면 파산 위험에 노출되는데,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1997~1999년 연쇄적 대기업 파산 사태다.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정보시스템, EAR리서치 계산
끝없는 투자 경쟁, 파산 위험 앞에서 한국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 예상한 바와 같이 배당을 통해 외부에 자금을 유출하기보다 기업 내부에 자금을 최대한 유보하려고 노력한다. 1997년 한국 제조업의 부채 비율은 396.3%에 이르렀지만, 올해 1분기에는 71.7%에 불과할 정도로 개선됐다(그래프2 참조). 이렇게 재무 여건이 건강한데도 기업 성과는 안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을 보면 2017년 7.6%이던 것이 2020년 1분기에는 3.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그래프3 참조). 보유 현금을 최대한 늘린 선택이 옳았던 셈이다.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정보시스템, EAR리서치 계산
따라서 한국 투자자들은 이제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수출 모멘텀’이다. 흔히 모멘텀 하면 주식 가격의 방향을 뜻하지만, 필자는 수출 방향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프2’와 ‘그래프3’에 나타난 것처럼 주기적 영업이익의 반등은 모두 수출 회복과 연관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수출이 회복되고 영업이익의 반등이 나타나는 징후에는 어떤 게 있을까. 다음에는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홍춘욱은…
연세대 사학과 졸업 후 고려대에서 경제학 석사,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한국금융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등을 거쳤다. 현재는 EAR리서치 대표이자 세종사이버대 경영학과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투자의 신세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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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이코노미스트·경영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5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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