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 샘솟는 두 물줄기… 천재 기르고 ‘한강의 기적’ 낳다

글·사진 양평=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입력 2021-09-11 03:00 수정 2021-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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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기 양평 두물머리

운길산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 풍경. 두물머리(가운데) 위쪽이 남한강이고, 아래쪽이 북한강이다.

《‘해변 개가 산골 부자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다. 산에서 생산되는 물산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강가나 바닷가에서 이뤄지는 재화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다는 비유다. ‘물길은 재물을 주관한다(水管財物)’는 풍수 이론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물길이 풍요로운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한강을 ‘서울의 젖줄’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본격적으로 한강이 시작되는 경기 양평 양수리는 풍요로움의 원천지가 되는 셈이다. 두 강이 하나되는 두물머리(兩水里)는 아름다운 절경까지 빚어내 한강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명소이기도 하다.》

한강은 서울, 나아가 한국 경제를 풍성하게 살찌워주는 ‘재물의 강’이다. 오죽하면 우리 경제의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를까. 그 기운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다. 저 멀리 금강산에서 흘러온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에서 발원한 남한강 두 물줄기가 굽이굽이 흘러와 합쳐지는 곳이다 보니 그 기세가 장엄하고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운길산 자락의 수종사에서는 도도하게 흐르는 두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은 수종사에 올라 한강의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동방의 절 중 제일가는 전망’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수종사는 조선 중·후기엔 차를 즐기는 ‘차꾼’들의 거점지이기도 했다. 정약용, 초의선사, 김정희 등 내로라하는 차 마니아들이 즐겨 이곳을 찾곤 했다. 지금도 서울 일대의 차꾼들은 으레 이곳 삼정헌(三鼎軒)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두물머리 풍경을 즐기곤 한다.

○합수처 물 기운 받은 정약용 유적지

마재마을에 있는 정약용 생가(여유당)와 묘소(뒤).
일교차가 심해지는 초가을, 새벽녘의 물안개와 일출 및 일몰이 멋진 두물머리는 인문지리학의 눈으로는 합수처(合水處) 명당이다. 두 물이 합쳐 하나가 되면서 지형을 감싸듯 돌아 흐르는 땅에는 에너지(기운)가 강력한 혈(穴)이 존재한다는 게 풍수 논리다. 이곳 두물머리 명당 기운을 제대로 받아 누린 이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을 꼽을 수 있다.

정약용은 팔당호숫가 마재마을(마현마을·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나고 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인근 수종사에서 공부하는 등 젊은 시절을 보냈고, 전남 강진에서 17년 넘게 유배 생활을 마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현재 마재마을에는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 등 ‘정약용 유적지’가 조성돼 있다. 유적지 한쪽 드넓은 마당이 펼쳐지는 곳에 정약용이 태어난 집이 있다. 그가 ‘여유당(與猶堂)’이라고 이름 지은 생가다. 본래 생가는 1925년 을축대홍수로 한강이 범람했을 때 유실됐고, 지금 모습은 1986년 전통 한옥 구조로 복원한 형태다. 원생가는 유적지 주차장 부근이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새로 복원한 생가 터가 명당임은 분명하다.

이 터는 목화토금수 오행론(五行論)으로는 수, 즉 물 기운이 풍성한 곳이다. 정약용도 느낌으로 알았던 것일까, 자신의 집을 ‘수각(水閣)’이라고도 불렀다. 수는 지혜와 창조적 활동 등을 상징하며, 수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사람도 이런 특성이 도드라진다는 게 동양인문학의 논리다. 실제로 정약용은 창조적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정조 임금이 수원 화성으로 갈 때 한강을 쉽게 건널 수 있도록 목선들을 연결한 ‘배다리’를 고안하고,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거중기를 설계하는 등 창의적 행동들로 유명했다. 정약용 생가를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지혜와 창조의 에너지가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게 된다. 땅에서 기운을 얻는 일종의 취기법(取氣法)이다. 그의 생가 바로 뒤편 동산에는 그의 묘가 있다. 그가 직접 점지한 ‘사후의 집’인데, “지관(地官·풍수사)에게 물어보지 말라”는 유언을 자손에게 남겼다. 생전에 길흉화복만 강조하는 풍수설을 불신한 그는 ‘산과 물이 거듭 둘러싸서 좋은 기상을 이룬 곳이 좋은 땅’이라고 밝힌 주자의 풍수론은 그대로 따랐다. 그의 묘가 바로 그런 곳이다.

○두물머리에서 한강을 품다

두물머리의 상징인 수령 400년 느티나무.
정약용 유적지에서 두 강이 만나는 현장인 두물머리(양평군 양서면)까지는 차로 10여 분 걸린다. 두물머리의 상징은 수령 400년 된 늙은 느티나무다. 원래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 그루는 1972년 팔당댐 건설로 수몰됐고, 지금의 느티나무만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도당할아버지 나무’라고 해서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제를 지낸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높이 26m, 둘레 4.8m로 방문하는 이들에게 휴식과 안정을 선사하는 힐링 명소이기도 하다. 느티나무 바로 옆에는 청동기 시대의 작품인 고인돌 한 기도 자리 잡고 있다. 고인돌 덮개돌 윗면에는 크고 작은 홈구멍이 있는데, 북두칠성 등 별자리를 상징하는 성혈로 알려져 있다. 고인돌이 조성됐다는 것은 이곳이 고대부터 성스러운 장소이자 명당 터였음을 암시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거의 대부분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초가을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느티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 한강의 물 기운과 터의 명당 기운을 동시에 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이때 강물이 흘러나가는 쪽보다는 흘러오는 쪽으로 시선을 두는 게 좋다. 흘러오는 곳은 그 기운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쉼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특별히 물안개를 잘 감상할 수 있는 물안개 쉼터가 있다. TV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이른 새벽 물안개 절경과 저녁노을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이 즐기는 쉼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더 전진하면 두물머리 나루터가 나온다. 한때 강원도 산골에서 나무 등을 싣고 온 뗏목꾼들과 한양(서울)을 오가던 길손들로 시끌벅적하던 나루터였다. 그러나 팔당댐 건설과 함께 두물머리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지금은 가족이나 연인들이 평일에도 찾아와 북적북적한 나루터 분위기를 살려준다. 소원을 들어준다 하여 ‘소원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나루터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세미원에 피어 있는 수련.
조선시대 이건필의 ‘두강승유도’와 겸재 정선의 ‘독백탄’으로도 남겨져 있는 명승지 두물머리에서 물 기운을 충분히 누린 후, ‘물과 꽃의 정원’으로 유명한 세미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물머리에서 세미원 후문까지는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물로 막혀 있던 두 장소를 이어주는 ‘배다리’가 인상적이다.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러 한강을 건너가는 정조 임금의 효와 배다리를 설계한 정약용의 지혜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열수주교(烈水舟橋)’라고 한다.

경기도 지방정원인 세미원 내 장독대 분수.
‘경기도 제1호 지방정원’으로 지정된 세미원은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물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전통 정원 양식과 수생식물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8월 중순까지만 해도 활짝 핀 연꽃을 감상할 수 있지만, 지금의 저문 연꽃 또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또 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드문드문 핀 화려한 수련 꽃, 항아리 모양의 ‘장독대 분수’, 갈대밭이 무성한 오솔길 등은 세미원 입장료(5000원)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친 일상생활에서 물의 기운을 받아 회복 에너지로 삼는 여행지로서는 두물머리 일대가 제격이다.


○가볼 만한 곳


북한강변 ‘물의 정원’의 포토존.
▽남양주 물의 정원:
두물머리에서 북한강 쪽 풍광을 즐기고 싶다면 남양주 ‘물의 정원’을 추천한다. 물의 정원은 국토교통부가 2012년 한강 살리기 사업으로 조성한 수변생태공원(48만4188m²)이다. 북한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광대한 정원에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잘 조성돼 있다. 물의 정원을 상징하는 다리인 뱃나들이교를 건너면 강변 산책로를 따라 대규모 초화(草花) 단지가 조성돼 있다. 9월에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가 장관이다.


명소로 부상한 능내역 폐역.
▽능내역 폐역:
남양주 조안면에 있는 능내역 폐역은 옛 기차역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덕지덕지 때 묻은 간판, 코딱지만 한 대합실, 역사 안팎에 걸린 낡은 흑백사진, 입구에 나무로 만든 빨간 우체통 등이 있는 이 폐역은 최근 복고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능내역은 1956년 개통돼 지역 주민들의 서울 통학·통근용으로 애용되다가 2008년 경의중앙선 철도 노선이 변경되면서 폐역이 됐다. 철로변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놓이면서 북한강변을 즐기는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 입소문이 난 이후 관광객들의 추억여행지로 부상했다.







글·사진 양평=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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