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직자 ‘재취업제한 예외’ 남발… ‘힘센 기관’은 무더기 승인

신진우 기자 , 권기범 기자 , 김호경 기자

입력 2021-09-09 03:00:00 수정 2021-09-09 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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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연관성 있어도 예외규정 적용
靑비서실-경찰청-감사원-기재부
올해 심사받은 15명 100% 통과



김영식 전 대통령법무비서관은 5월 법무법인 ‘광장’에 취업하려 했지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에서 취업제한 판정을 받았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 공직자는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관련성이 높은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김 전 비서관은 4월까지 약 1년간 청와대에서 일했다.

그러나 김 전 비서관은 6월 ‘광장’의 파트너변호사로 들어갔다. 공직자윤리위가 한 달 뒤 재검토를 거쳐 업무 연관성에 대한 예외규정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국민의힘 조태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 전 비서관처럼 업무 연관성에 대한 예외규정을 적용받아 재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전체 재취업 공직자 가운데 27.5%로 지난해 13.9%에서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특히 예외규정 심사 대상으로 분류된 공직자 중 85.7%가 취업승인을 얻어냈다. 그중 대통령비서실(3명), 경찰청(5명), 감사원(5명), 기획재정부(2명) 등 핵심 권력 기관 소속 공직자는 모두 예외규정 심사를 통과했다. 검찰도 6명 중 1명의 탈락자만 나왔다.

조 의원은 “퇴직 공직자가 재취업하려는 곳이 기존 업무와 연관성이 있어도 ‘공공의 이익’ 등에 부합하면 예외규정을 적용해주는 ‘취업승인’ 제도가 남발되고 있다”며 “임기 말 친정부 인사의 낙하산 인사를 위한 면죄부로 활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재취업 제한 예외’ 靑비서실-경찰청-감사원 출신 모두 통과
예외 남발, 올해 공무원 126명 적용


지난해 5월 청와대를 떠난 천경득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지난달 금융결제원 상임감사로 발탁됐다. 퇴직 이후 3년간 근무 기관의 업무와 관련성이 높은 기관에 취업할 수 없었지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에서 업무 연관성에 대한 예외규정을 인정받았다. 통상 고위 경제 관료들이 기용되던 자리에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 청와대 인사가 발탁되자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2018년 12월 퇴직한 이주민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2월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취임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공직자윤리위로부터 받았다. 도로교통공단은 경찰청 산하 공공기관이라 업무 연관성으로 인한 취업 제한 가능성이 컸지만 예외규정을 적용받은 것. 공직자윤리위는 승인 이유로 ‘국가 대외경쟁력 강화 및 공공의 이익’ 등을 내세웠다.

○ 올해 재취업 예외규정 적용 공직자 126명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한 공직자는 퇴직 이후 3년간 공직자 시절 마지막 5년 동안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자의 재취업 제한 기간이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고, 취업 제한 대상 기관도 대폭 확대됐다.

그러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업무연관성 예외규정을 적용받아 이런 제한을 피한 공직자가 올해만 126명이다. 전체 재취업 퇴직 공직자(459명) 중 27.5%에 이른다. 하반기(7월∼현재)만 따지면 이 비율은 28.9%로 높아진다. 상당수 퇴직 공직자들이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업무 연관성이 있어도 취업을 승인해주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활용해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아도 재취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이 핵심 권력기관 출신 공직자에게 쏠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청와대(대통령비서실), 경찰청, 감사원, 기획재정부 등 핵심 권력기관 4곳에서는 업무연관성 예외규정 심사 대상이 된 15명 모두 심사를 통과했다. 검찰청과 금융감독원에서는 각각 심사 대상자 6명, 5명 가운데 1명씩만 심사에서 탈락했다.

○ “예외규정인데 예외적이지 않아 문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은 업무연관성이 있더라도 △국가안보상 이유나 국가의 대외경쟁력 강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본인이 직접 담당했던 업무와 취업하려는 기관 간 밀접한 관련성 없는 경우 △취업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자격증·근무경력·연구성과 등이 있어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 등에 해당하면 취업을 승인해준다.

하지만 예외규정 기준 자체가 모호해 퇴직 공직자를 구제해주는 용도로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예외규정 기준이 추상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며 “예외규정이지만 예외적이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직자윤리위의 심사위원 명단이 공개되지 않고, 심사 결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깜깜이’ 심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청와대, 검찰, 감사원 등 핵심 권력기관의 퇴직자가 예외규정을 인정받기 쉬운 것 아니냐는 것. 다른 정부 관계자는 “영향력 있는 기관의 공무원일수록 퇴직 후 ‘알짜배기’ 기관에 재취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기류가 공직 사회에 있다”고 했다. 김병섭 서울대 명예교수(행정대학원)는 “업무연관성 예외규정을 남발하면 공직자 재취업을 엄격하게 심사하겠다는 기존 제도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특히 정권 말 ‘공신’들을 챙겨주는 도구로 쓰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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