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택배노조, 非노조원 따돌리고 작업 방해… 노조 가입하면 멈춰

변종국 기자

입력 2021-09-08 03:00 수정 2021-09-0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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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지역간부들, SNS 대화방서 가입 거부하면 쫓아낼 방안 논의
택배기사들 근로여건 개선 위해 사회적 합의로 ‘분류도우미’ 도입
업계 “노조, 세확장 위해 회유-협박”



“非노조 분류도우미 몰아내자”는 택배노조
상품 송장 안보이게 상자 뒤집기… 분류작업 방해하는 노조원 영상 속에서 한 택배노조 조합원이 택배 컨베이어 작업대에 올려져 있는 택배 물품을 뒤집고 있다. 물품을 뒤집으면 주소 등이 적힌 송장(빨간색 원 안)이 밑에 깔려 지역별로 분류하지 못하거나 송장 확인을 위해 택배를 다시 뒤집느라 배송이 지연된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배송을 방해하기 위해 고의로 뒤집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상은 4월 촬영됐다. 독자 제공

택배노조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현장에 투입된 ‘택배 분류인력(분류 도우미)’을 노조에 가입시켜 세를 불리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류 도우미는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를 막고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업계와 정부, 국회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가 논의를 벌여 도입한 제도다. 주로 택배 대리점이나 택배회사의 협력사 등이 고용해 운영한다.

7일 본보가 입수한 한 지역 택배노조 지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는 ‘비노조 분류 도우미 몰아냅시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뒤이어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의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분류 도우미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한 뒤 이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작업장에서 쫓아내자는 취지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실제로 여러 지역 노조 간부들은 다양한 투쟁 전략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향후 현장에 대거 투입될 분류 도우미를 노조로 포섭하거나,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배제시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취재에 응한 한 대리점주는 “분류 인력이 투입되면서부터 ‘이들을 노조에 가입시키자’ ‘택배노조와 연대해서 활동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고 했다. 또 “노조원들이 분류 도우미들에게 접근해 분류 업무를 수월하게 해주겠다면서 연락처를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권유한 것으로 들었다”며 “노조에 협조적이지 않으면 일을 관두게 괴롭히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택배 물품을 배송지역별로 분류하는 등 택배기사 작업을 돕는 분류 도우미들은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배치돼 내년 1월 1일까지 순차적으로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CJ대한통운(약 5000명)과 한진택배(약 4000명), 롯데택배(약 4000명) 등에서 1만3000명이 넘는 인력이 현장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택배노조 측이 택배 현장에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분류 도우미들을 회유와 협박 등으로 포섭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분류 도우미들이 택배노조에 합류할 경우 택배현장의 혼란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진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을 돕자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장에 투입된 분류 도우미마저 포섭해 대리점을 장악한 뒤 단체행동을 통해 노조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노조가 택배 현장을 장악하면 택배 물품을 담보로 투쟁을 일삼을 것이 뻔하다. 또 다른 형태의 갈등이 벌어지면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노조 측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택배노조, 非노조원 따돌리고 작업 방해… 노조 가입하면 멈춰
택배노조 ‘세력 부풀리기’ 곳곳 갈등

영상 속에서 붉은 머리띠를 한 택배노조 간부 A 씨가 택배노조 농성 등에 항의하는 택배업체 직원의 가슴 부위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2019년 4월에 촬영된 이 영상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판에 올라와 공개됐다. 독자 제공

“택배노조 내부에서는 노조가 실생활과 연관된 택배 플랫폼 산업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노조가 대리점을 장악하는 데 8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들었다.”

서울 강남권의 한 택배 대리점 소장(대리점주)은 택배노조가 분류 도우미들을 노조원으로 포섭하려고 논의한 정황을 동아일보에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CJ대한통운 경기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40)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노조의 세 불리기와 대리점 빼앗기 등이 택배업계를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택배 현장에서는 택배노조의 집단적인 세력 부풀리기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2019년 4월 경기 성남시에선 택배노조의 한 간부가 컨베이어벨트 위로 올라가 비노조원 택배기사의 가슴을 발로 걷어차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조의 일방적인 선전전에 항의했다는 이유였다. 이 일은 최근 ‘택배기사 권리 찾기 전국 모임’이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판에 영상이 올라오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폭행당한 택배기사는 둔기를 들면서 맞대응을 했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다른 택배노조원이 상해를 입었다. 그러자 택배노조 측은 폭행에 대한 합의를 빌미로 택배기사에게 노조에 가입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노조원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 택배 현장에선 한 노조원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택배 상자를 뒤집어 택배 송장(주소 등이 적힌 표지)이 아래로 가게 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올해 4월 발생한 일이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택배기사의 작업을 방해한 것이다. 경기 북부지역의 한 택배기사는 “송장이 뒤집혀 있으면 배송주소를 볼 수 없어 분류작업이 지연된다. 이렇게 교묘하게 괴롭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고 했다. 또 “비노조원들이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으로 이어지면 그걸 빌미로 형사·민사 소송을 걸거나, 노조 가입을 유도한다”며 “어떻게 보면 전략적인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경기 지역의 한 택배기사는 “노조에 가입을 안 하면 ‘왕따’를 시키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괴롭힘에 못 이겨 노조에 가입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위력을 통해 이득을 얻게 해주겠다며 노조 가입을 적극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 한 택배기사는 “노조에 가입하면 택배 수수료를 더 받게 해주겠다기에 ‘수수료는 원청의 재량인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되물으니, ‘쟁의권을 얻어 파업 몇 번 하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기 분당지역의 한 대리점 소장은 “지역 택배노조 간부로부터 ‘노조원 몇 명 가입시켜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못 하겠다고 하니 ‘그럼 그 숫자만큼 조합비를 내라’고 했다”며 “특히 노조에 가입하고 나면 선전국장, 미디어국장, 총무 등 간부직책을 준 뒤 조합원 포섭을 독려하고 노조 탈퇴도 못 하게 한다”고 말했다.

택배노조가 세력 불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내부의 정치지형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민노총은 간선제이던 위원장 선거를 2014년 조합원 직선제로 바꿨는데 그때부터 조합원 수가 많은 노조가 힘을 얻게 됐다”며 “인력이 몰리고 있는 택배 등 플랫폼 산업에서 조합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치열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본보, 택배노조원의 非노조원 대상 통화 녹취 입수
“○○점장, 우리가 날릴 것… 노조 가입하라”
대리점 뺏기 정황 또 드러나… 노조측 “개별 노조원의 일탈”


택배노조의 집단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CJ대한통운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 사례 외에도 택배 노조원들이 택배 대리점주를 압박해 대리점을 뺏으려 했던 정황이 또 확인됐다.

7일 본보가 입수한 택배노조원과 비노조원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경남 지역의 한 택배노조원은 비노조원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노동조합에 가입하세요”라고 권유하며 “○○ 점장은 어차피 잘린다. 날릴 것이다. △△△처럼 (날릴 것이다)”이라고 말했다. 이미 다른 대리점 소장을 한 명 그만두게 했고, 다른 지점 소장도 택배 운영을 포기하게 할 것이란 의미다. 또 다른 통화 녹취에서 한 택배노조원도 다른 지점과의 택배 수수료 차이 등을 언급하면서 “소장이랑 점장 등은 저희 쪽(노조)에서 집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던 CJ대한통운, 한진택배 외의 다른 택배 대리점에서 생긴 일이다.

이 같은 대리점 장악 발언에 대해 택배노조 측은 “노조 차원의 대응이 아닌 개별 노조원의 일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택배 대리점주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리점 장악 시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CJ대한통운 김포 택배 대리점 사례에서도 이 소장과 함께 일한 노조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 등에서 “여기 계시는 동지분들 때문에 이 소장이 일단 대리점 포기를 한 상태입니다” “더 힘내서 대리점 먹어봅시다”라고 한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올해 3월에도 경기 지역의 한진택배 대리점 운영 신청자에게 노조 간부가 전화를 걸어 “입찰에 참여하면 1년 내내 파업을 할 것이니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신규 대리점은 택배노조의 압박에 못 이겨 대리점주가 지역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진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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