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란이 어떻게 인체 조직-장기로 자라나’ 비밀 풀었다

홍은심 기자

입력 2021-09-08 03:00 수정 2021-09-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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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병원-KAIST 연구팀
기증받은 시신 세포-유전체 분석
선별검사-정밀치료 시스템 구축
희귀질환 예방 등에 이바지 기대


오지원 경북대병원 교수
주영석 KAIST 교수
오지원 경북대병원 교수와 주영석 KAIST 교수 연구팀이 인간 발생 과정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세포 전장유전체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지난달 2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연구는 배아에 존재하는 소수의 세포들이 40조 개의 인체 세포를 어떻게 구성하고 언제 장기로 분화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됐다.

하나의 수정란은 수억 개의 인간 세포로 분열해 200종이 넘는 세포와 다양한 장기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인간 발생 과정에 대한 연구는 유산된 태아를 관찰하거나 동물 모델을 이용했다. 하지만 윤리적, 기술적 이유로 인간 배아 세포로 직접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배아 발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모든 세포는 분열할 때 체세포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DNA 염기 서열의 변화가 일어난다. 60억 쌍에 달하는 인간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발생한 체세포 돌연변이는 이후 자손 세포에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바코드로 활용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7명의 시신 기증자에게 총 334개의 단일세포와 379개의 조직을 기증받아 전장유전체를 분석하고 세포에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DNA 돌연변이와 세포들의 움직임을 고해상도로 재구성했다.

분석 결과 배아 발생 세포가 신체를 구성할 때 불균등한 분포를 보이는 것을 알아냈다. 배아 2세포기의 두 세포 중 한 세포가 다른 세포에 비해 더 많이 인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비율은 1.4 대 1에서 6.5 대 1로 사람마다 달랐다. 개인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원시 생물과 달리 사람의 발생 과정에는 확률론적인 과정이 개입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연구팀은 특정 신체 부위, 배엽, 장기를 구성할 때 특정 배아 세포가 더 많이 분포하는 불균등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매우 초기부터 세포의 운명이 단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세포의 계통도를 이용해 배아 발생 과정에서 발생하는 체세포 돌연변이 수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정했다. 세포마다 분열할 때 1개 전후의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수정란의 첫 분열 시에는 이보다 더 많은 수의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수정란 내에는 DNA 수리에 필요한 단백질이 충분히 발현하지 못해 돌연변이 수가 높은 것으로 추측했다.

이 외에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정란 내에 미토콘드리아의 이질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으며 성염색체의 숫자 이상이 정상세포에서 흔하게 발생함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초고속 유전체 기술로 전장 유전체 빅데이터의 생명정보학 분석을 이용해 인간 배아 발생 과정을 정밀 분석했다. 연구는 윤리적인 문제없이 인간의 초기 배아 발생 과정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향후 발생 과정 이상으로 생기는 희소질환의 예방, 선별검사와 정밀 치료 시스템 구축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 교수는 “죽음에 이른 신체로부터 인간 생명의 첫 순간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신체를 기증한 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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