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왕세자의 이 양복… 제 손으로, 한국인 옷솜씨, 전 세계인 로망되길”

손효주 기자

입력 2021-09-07 03:00 수정 2021-09-07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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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펜서’ 양복 만든 김동현씨
내년 개봉 ‘더 배트맨’서도 5벌 제작… “세계인이 본다고 생각하니 자부심”
‘킹스맨’ 배경 런던 맞춤양복 거리서 유일한 한국인 재단사로 경력 쌓아


김동현 씨가 만든 양복을 입고 있는 영화 ‘스펜서’ 속 찰스 왕세자. 영화 ‘스펜서’ 스틸컷.

내년에 개봉할 영화 ‘더 배트맨’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과 악당들은 양복을 여러 벌 바꿔 입는다. 지난주 개막한 제78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스펜서’에서도 찰스 왕세자 역을 맡은 배우 잭 파딩은 영국 정통 방식으로 제작된 정장들을 입는다. 이들 영화에 나오는 양복을 만든 사람이라면 으레 나이가 지긋한 백인 재단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를 만든 이는 젊은 한국인이다. 영국 런던에서 테일러로 일하다 최근 귀국한 김동현 씨(32)가 주인공. 그는 ‘더 배트맨’ 의상 다섯 벌과 ‘스펜서’ 의상 세 벌을 만들었다.

김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인이 만든 영국 정통 양복을 세계인들이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한국인로서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씨는 런던 새빌로 거리에서 올 3월까지 만 3년간 테일러로 일했다. 이곳은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양복점이 자리 잡은 곳으로 영국 왕족 등 상류층이 주로 찾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도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김 씨는 ‘맞춤 양복의 성지’로 불리는 새빌로 거리에서 유일한 한국인 테일러였다. 그는 새빌로 맞춤 협회(Savile Row bespoke association) 소속 양복점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웠다. 손바느질 기준을 깐깐히 적용하는 영국 정통 양복 제작법을 고수하는 양복점만이 이 협회에 가입할 수 있다.

김 씨는 ‘스펜서’에서 찰스 왕세자가 입는 슈트 2벌과 코트 1벌을 만들었다. 앞서 지난해 11월 영화 제작사는 왕족의 품격과 영국 양복의 정통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정장을 2개월 안에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씨는 “왕가의 복장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왕족 사진집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왕족들의 옷을 자주 제작한 원로들을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김동현 씨가 영국 런던 새빌로 거리 양복점에서 양복을 제작하기 위한 마름질을 하고 있다. 김동현 씨 제공
김 씨는 2014년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 대학 의류디자인학과에 다니던 그는 여성복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과 유행에 민감한 한국 패션계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는 옷은 없을까 고민하다 그것이 바로 영국 양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양복의 고향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런던예술대에서 맞춤 양복(bespoke tailoring)을 전공하며 양복 기술과 문화를 폭넓게 공부했다. 2017년 새빌로 맞춤 협회가 2년에 한 번 양복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는 ‘황금 가위 경연’에서 최종 25인에 올랐다. 졸업 후 3년간 새빌로 거리 양복점에서 일하다 올 3월 귀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늘어 영국 양복 시장이 침체된 탓도 있지만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꿈이 있어서였다. 그는 최근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조만간 영화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옷을 편집숍 등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자신의 가게를 연다.

김 씨는 “좋은 옷이란 입을수록 빛나고 몸에 잘 들어맞는 옷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래돼도 촌스럽지 않고 더 우아하게 느껴지는 영국 정통 양복 기술을 적용한 옷을 국내에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실력을 더 쌓은 뒤 영국으로 돌아가 김동현이라는 한국인이 만든 양복을 영국인들에게 입히는 게 최종 꿈입니다. 누구나 제 옷 한 벌을 갖는 게 꿈이 될 때까지 정진하려고 합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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