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년 주기로… 인류, 초원으로 변한 사우디 사막 거쳐 대이동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09-06 03:00 수정 2021-09-0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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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푸드 사막 호수 흔적-유물 분석
40만 년 전부터 주먹도끼 등 남겨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네푸드 사막의 고대 호수 유적 칼아마이샨4는 초기 인류가 40만 년 전부터 수차례 드나든 곳으로 추정된다. 막스플랑크인류사과학연구소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네푸드 사막은 사방이 모래로만 가득해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삭막한 불모지다. 하지만 10만 년 주기로 푸른 초원으로 바뀌어 과거 인류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다른 대륙으로 이동할 때 이용했던 주된 통로였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마이클 페트라글리아 독일 막스플랑크인류사과학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네푸드 사막에서 발견된 호수 흔적과 고대 석기를 분석한 결과 과거 10만 년 단위로 기후가 바뀔 때마다 호수와 초원이 형성됐으며 고대 인류가 거쳐 간 흔적이 발견됐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일 공개했다.

인류학자들은 아라비아반도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호미닌(hominin·인간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종족)이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 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부근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레반트 지역을 20만 년 전에 거쳐 간 증거가 발견됐다. 하지만 네푸드 사막과 맞닿아 있던 레반트 남쪽 사막은 가혹한 환경 때문에 인류가 이동 경로로 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연구팀은 네푸드 사막 북부에서 발견된 축구장 7개 넓이의 움푹한 지형인 ‘칼아마이샨4’에서 과거 호미닌이 쓰던 돌 칼날 모양의 석기를 찾아냈다. 이 지역은 최근 40만 년간 간빙기 때마다 강우량이 늘어나며 호수가 형성됐던 곳이다. 약 40만 년 전 처음 호수가 형성된 뒤 10만 년 주기로 형성되다가 10만 년 전 이후엔 주기가 짧아져 5만5000년 전 마지막으로 호수가 형성됐다. 그럴 때마다 호수 바닥에서는 하마 뼈와 영양 이빨 등 물이 풍부한 지역에 사는 포유류 화석이 발견됐다.

인류 조상이 쓰던 석기도 같은 주기로 발견됐다. 석기의 상태로 볼 때 호수가 생겨날 때마다 다른 종의 호미닌이 이주했다가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40만 년 전과 30만 년 전 석기로는 주먹도끼와 찍개로 대표되는 아슐리안 석기가 주로 나타났다. 반면 그 뒤에 발견된 석기는 얇은 돌 파편 같은 중기 구석기의 특성이 나타났다.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호미닌이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칼아마이샨4에서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주바 오아시스에서도 20만 년 전과 7만5000년 전 비슷한 석기 도구가 발견됐다.

이 연구는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시점이 이전 연구보다 더 빨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최근까지도 약 6만5000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돼 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1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턱뼈가 발견되고 그리스에서 21만 년 전 두개골이 발견되면서 초기 이주 시기가 더 이전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호미닌이 이주할 환경은 이미 6만5000년 전 이전에도 기후가 바뀔 때마다 수차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앤드리아 매니카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물학부 교수팀은 30만 년간 북동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기후를 분석한 결과 수렵채집을 하는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이주할 기회가 많았다고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강우량이 충분하면서 아라비아 남서부와 아프리카를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넘을 만큼 해수면이 낮았던 시기도 있어 아라비아 남부에서 사막을 거쳐 이주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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