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은 마음 먹기 달렸다? 냄새 맡기에 달렸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09-06 03:00 수정 2021-09-0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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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의 영향력-활용법 연구 ‘활발’

지난해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MRC) 연구진이 발표한 초파리의 후각 뇌지도. MRC 제공
사람의 식욕을 관장하는 곳은 어디일까. 토르스텐 칸트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 신경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후각이 먹는 행위를 조종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8월 27일자에 발표했다. 사람이 냄새를 느끼는 것은 코 점막의 후각 수용체가 냄새 분자를 감지해 뇌에 전달하기 때문인데, 음식을 먹고 포만감이 들면 뇌의 후각 피질이 음식 냄새를 자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후각 뇌지도’를 그려 식욕 억제부터 질병 진단, 감정 조절까지 후각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 자기공명영상 촬영해 후각 뇌지도 작성
후각은 식욕뿐 아니라 음식의 맛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감각 가운데 눈은 빛 에너지를, 귀는 소리 에너지를 인지하지만, 후각과 미각은 화학 분자를 감지한다. 이 때문에 둘은 ‘화학감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으로도 불린다. 음식 5개 중 4개는 향으로 먹는다고 할 만큼 두 감각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후각과 미각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이 사과와 양파를 이용한 블라인드 실험이다. 사과와 양파를 같은 크기로 썬 뒤 눈을 가리고 코를 막은 채 먹게 하면 인간의 미각은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식감이 비슷하고 당 함량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후각과 미각 중에서 훨씬 많이 연구된 것은 미각이다. 쓴맛, 단맛, 신맛, 짠맛을 느끼는 수용체가 각각 발견됐고, 여기에 감칠맛 수용체도 확인돼 현재 다섯 가지 미각 수용체로 음식의 맛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톡 쏘는 탄산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Car4)와 기름이 내는 지방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CD36)도 제6의 맛과 제7의 맛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후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후각 수용체가 인지하는 냄새 분자는 1조 개가 넘는다. 한 분자가 한 가지 냄새를 내는 것도 아니다. 가령 케톤기(C=O)는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데, 케톤기가 포함됐다고 해서 모두 달콤한 향을 내지는 않는다. 원자 3개로 이뤄진 황화수소(H2S)나 원자 10개 이상이 모인 데카보란(B10H14)은 서로 다른 분자이지만 인간의 뇌는 둘 다 달걀 썩는 냄새로 인지한다.

이런 이유로 아직 학계에서 후각 뇌지도를 그리는 공통된 방법은 없다. 칸트 교수팀은 사람이 특정 냄새를 맡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해 뇌 반응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후각 뇌지도를 그리고 있다. ‘방금 꺾은 풀 향기’ ‘달콤한 꽃향기’ 등 사람이 인지하는 냄새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이 냄새에 반응하는 뇌 부위를 찾아 표시하는 것이다.

○ 콧물 특이 단백질로 알츠하이머병 조기 진단
후각은 질병 조기 진단에도 활용된다. 질병이 생기면 몸의 대사 과정이 바뀌고 몸에서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달라져 냄새가 바뀐다. 폐암 환자의 경우 매직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스라엘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올해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냄새로 찾는 ‘전자코’를 개발하기도 했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의 전조 증상으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후각 진단법을 개발해 올해 1월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 리서치앤드세러피’에 발표했다. 경도인지장애가 나타나면 5년 안에 알츠하이머병이 나타난다. 문 교수는 “치매 환자의 콧물에서만 발견되는 단백질 100여 종을 분리했고, 이 중 가장 정확도가 높은 단백질 2종을 바이오마커로 쓴다”며 “2년 내 진단키트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과 자존감, 향에 따라 조절
사람 코 점막의 후각 수용체가 냄새 분자를 감지해 뇌에 전달하면 냄새를 느낀다. 미국모넬화학감각연구소 제공
후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후각 신경세포는 ‘감정의 뇌’로 불리는 편도체, ‘기억 저장소’로 불리는 해마와 모두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특정 냄새는 과거의 기억과 함께 감정도 되살린다.

아모레퍼시픽은 DGIST와 공동으로 갱년기 여성의 우울감과 걱정을 완화해주는 향을 개발해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실험 신경생물학’ 표지논문으로 발표했다. 당시 DGIST 소속으로 연구를 주도한 문선애 LG전자 선임연구원은 “세포 실험을 통해 개발한 두 가지 향과 라벤더 등 총 여섯 가지 향을 갱년기 여성이 맡게 한 뒤 뇌파 검사(EGG)를 이용해 알파파와 베타파의 강도 변화를 측정했다”며 “갱년기에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여성일수록 뇌파 변화 정도가 크고 향의 효과가 뛰어났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중 가장 효과가 좋은 향 1종을 갱년기 여성용 화장품에 넣어 판매하고 있다.

최근 기업에서는 뇌파, fMRI,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인지적 장비를 이용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속마음을 파악하고 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신경마케팅’도 도입하고 있다. 문 선임연구원은 “향에 따라 자신의 얼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등 향이 자존감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해 최근 논문을 투고했다”며 “뇌과학적 접근을 통해 긍정적인 고객경험을 설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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