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의 숨결 따라 가을속으로… 한 폭의 산수화가 마중나왔네

글·사진 홍천=전승훈 기자

입력 2021-09-04 03:00 수정 2021-09-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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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아트로드]홍천 수타사 산소길과 팔봉산

강원 홍천군 팔봉산 2봉(삼부인당)에서 바라본 3봉 정상. 가파른 철계단을 따라 바위 위에 올라서면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홍천강의 전경이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산소(O2)길’이냐 ‘정희왕후길’이냐. 늦장마가 오락가락하는 강원 홍천 공작산의 수타사(壽陀寺) 계곡은 향긋한 흙냄새와 나무향기가 가득했다. 계곡물 소리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수타사 산소길’이다. 이 길은 수타사에서 ‘귕소’ 출렁다리를 거쳐 다시 수타사로 돌아오는 3.2km 구간의 숲속 길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아름다운 계곡의 풍경뿐 아니라 정희왕후 태실, 월인석보, 정이품송, 수타사 동종 등 보물에 얽힌 역사적 스토리까지 음미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조선왕조의 첫 여성 정치인
홍천 수타사.

조선 7대 왕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는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하며 정치 일선에 나섰던 여인이다. 조선시대에는 6명의 대왕대비가 7회에 걸쳐 수렴청정을 했는데, 정희왕후가 첫 선례였다. 고려시대까지는 주로 왕의 어머니가 섭정을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정희왕후 이후로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인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지만, 14년 만에 병치레 끝에 승하했다. 세조가 죽은 뒤 차남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족질(足疾)이라는 병으로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의 형(의경세자)의 둘째아들인 성종이 13세에 왕위에 올랐다. 정희왕후는 성종이 20세 성인이 될 때까지 7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며 조선의 최고정책결정권자가 되었다.

수타사 흥회루.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주심포식 건물이다.
수타사 흥회루.

조선 초기 왕권의 혼란기에 보여준 정희왕후의 노련하고 과단성 있는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은 요즘도 회자된다. 그는 종친 정리작업을 통해 왕권을 안정시키고 종친의 관리 등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적도 감싸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세조에게 반기를 들어 역적으로 몰린 정종의 아들 정미수를 관리로 등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왕실의 고리대금업을 엄단하고 농업과 잠업을 육성했다. 과단성 있고 노련했던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조선 왕실은 안정되고, 이후 성종의 친정기에 문물제도가 완성되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정이품송 묘목.

세조와 정희왕후는 경기 남양주시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에 묻혔지만, 홍천엔 세조와 정희왕후의 흔적이 적잖게 남아 있다. 홍천의 공작산 입구에 있는 수타사는 정희왕후의 태가 봉안된 곳이다. 공작산은 예로부터 ‘한 마리의 공작새가 알을 품고 있는 듯하다’고 해서 공작포란형(孔雀抱卵形) 산세로 유명하다.

수타사 성보박물관에는 1459년 세조가 편찬한 월인석보(月印釋譜) 17, 18권이 보관돼 있다. 수타사 사천왕상 배 속에서 발견된 보물 제745호인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함께 묶어 펴낸 책이다. 훈민정음 창제 후 처음 나온 불경언해서로 불교문화사와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이다.

홍천 공작산 수타사 생태숲공원 내 연꽃이 피어있는 정원.
수타사 옆 연꽃이 피어 있는 생태숲공원을 지나서 숲속 길을 걷는다. 산소길이다. 계곡을 왼쪽에 끼고 천천히 걷다 보면 반환점인 ‘귕소’ 출렁다리가 나온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귕’은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나 말의 여물통의 황해도, 강원도 사투리라고 나온다. 기다랗게 생긴 소가 ‘갈 지(之)’자 모양으로 놓여 있는 모양이 여물통과 똑 닮았다.


‘귕소’ 출렁다리

귕소 출렁다리를 건너 다시 수타사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시퍼렇고 깊은 ‘용담(龍潭)’이 나온다. 용이 승천하는 연못이라는 전설이 있다. 용담으로 흘러들어가는 폭포에 명주 실타래를 풀면 끝이 없을 정도로 들어간다고 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동굴이 있어서, 소용돌이 때문에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깊은 물이다.

용담.

정희왕후는 아버지 윤번이 홍천 현감으로 재직 시 홍천의 관아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태가 봉안된 곳은 용담 뒤편에 있는 작은 능선으로 추정된다. 수타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는 봉분 모양으로 태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각 모양의 반듯한 돌들이 널브러져 있다. 조선총독부는 1928년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 각지의 사찰에 봉안된 왕실의 태실 53위를 서삼릉으로 옮겼으나 정희왕후의 태실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용담 주변에는 세조가 벼슬을 내린 소나무 정이품송의 자목(子木)도 심어져 있다. 홍천군이 충북 보은군으로부터 정이품송의 자목을 분양받아 심은 것이다. 홍천군은 수타사 산소길을 ‘정희왕후길’, 생태숲을 ‘왕후의 숲’으로 이름을 바꾸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세조와의 인연이 있는 역사 스토리텔링 관광자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아기자기한 절경이 펼쳐지는 팔봉산

팔봉산 제4봉에서 내려다본 홍천강.
홍천강.
수타사 산소길은 ‘홍천 8경(景)’ 중 제6경으로 꼽히는데, 제1경은 팔봉산(해발 327m)이다. 8개의 봉우리가 아기자기하게 어깨를 맞댄 산이다. 홍천강의 굽이치는 물줄기와 팔봉산의 기암절벽은 수반(水盤) 위에 놓인 아름다운 수석처럼 보인다. 매표소에서 출발해 1봉부터 8봉까지 완등한 후 원점 회귀하는 데 총 3시간 정도 걸리는 아기자기한 산이지만, 쉽게 봐선 큰코다친다. 암벽타기를 하듯이 바위에 박힌 철제구조물에 손과 발을 온몸으로 지탱하며 등산해야 한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봉우리에 올라설 때마다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4봉에서 바라보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고 돌아가는 홍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홍천(洪川)이란 지명이 유래한 ‘너브내’(넓은 내)의 모습이다.

팔봉산.

4봉을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철제 사다리를 이용하는 길이고, 또 다른 방법은 ‘해산굴’을 통과해서 올라가는 것이다. 좁은 바위틈을 통과하는 것이 출산의 고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산굴은 통과할 때마다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어 장수굴이라고도 불린다. 틈이 삼각형 모양이라 배낭을 벗고 몸을 요리조리 비틀며 올라가야 통과할 수 있다. 혼자 산행을 한 터라 굴 앞에 도착해 자칫 몸이 낄 것 같은 두려움에 용기를 잃고 먼 길을 돌아갔다. 8봉까지 등반한 후 하산 길에는 홍천강이 반겨준다. 홍천강변을 따라 낚시와 래프팅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는 산책길은 팔봉산 등산의 마지막 즐거움이다.

○탄약창고와 폐교가 미술관으로

미술 전시장으로 변신한 탄약정비공장 건물.
탄약정비공장 미술관.
탄약정비공장 미술관.

홍천에서는 지난해 ‘강원국제키즈트리엔날레’에 이어 올해는 9월 30일부터 ‘강원국제트리엔날레’가 열린다. 국제 미술제가 열리는 장소는 색다르다. 홍천군 결운리에 있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의 옛 탄약정비공장이다. 1973년 준공 당시부터 놓여 있던 폭발 방호벽, 컨베이어벨트와 탄약도장용 회전기계 등의 시설물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국내외 작가들의 벽화와 설치작품, 미디어아트 작품이 전시돼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가 펼쳐지는 와동분교.


국제미술제가 열리는 또 다른 미술관은 와동분교다. 1954년 개교한 후 62년의 역사를 끝으로 2015년에 폐교돼 잡초가 무성했던 곳이다. 교실과 뒤뜰에 미술작품이 설치됐고, 운동장에는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연못과 파빌리온이 설치됐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장터 국수, 젓갈, 꿀, 커피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와동분교 미술관.

와동분교 미술관.


○맛집

홍천읍 와동로 ‘홍천강 막국수’는 감칠맛 나는 막국수와 구수한 옹심이 칼국수가 유명하다. 팔봉산관광지에는 민물매운탕을 내는 식당이 많다. 홍천읍 하오안리 오안초등학교 주변에는 돼지고기·쇠고기 화로구이 집들이 모여 있다.

화로구이






글·사진 홍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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