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만족 못하는 중개보수 개편,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호경 기자

입력 2021-09-03 10:09 수정 2021-09-0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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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보수요율 개편 방침이 확정된 8월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보수체계 개편에 반대하며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공인중개사들은 요율 인하에 반발하는 반면 소비자들은 보수 수준이 여전히 높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부동산 중개보수는 더 내려야 합니다.” (소비자 A 씨)

“공인중개사의 희생을 강요하며 생존권을 짓밟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정부가 2014년 이후 7년 만에 부동산 중개보수 체계를 개편했지만 소비자와 공인중개사 모두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과 전셋값을 마련하기도 버거운데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중개보수까지 더 내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오른 집값만큼 중개보수 부담이 늘었지만 그렇다고 공인중개사들의 ‘벌이’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치킨집이나 편의점보다 많은 게 공인중개업소다. 공인중개사들은 출혈 경쟁으로 지금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정부가 중개보수까지 낮춘다고 하니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중개보수 개편이 근본 문제를 건들지 못한 임시 방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아무도 만족 못하는 중개보수 개편
지난달 중개보수 개편안을 확정한 국토교통부는 2일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거래 가격에 상한요율을 곱한 금액 이내에서 중개보수를 정하는 ‘정률제’ 방식이 유지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올 10월부터 상한요율은 지금보다 0.1~0.4%포인트 낮아진다.

6억 원이 넘는 집을 사거나, 보증금이 3억 원이 넘는 전셋집을 구하는 경우에만 중개보수가 지금의 최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서울과 세종, 집값이 비싼 수도권 일부 지역과 지방 광역시 일부 주요 아파트 정도에만 해당된다. 올 7월 기준 아파트 중위 매매가가 6억 원 이상인 지역은 서울과 세종뿐이다.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이 3억 원을 넘는 곳은 서울과 세종, 경기 등 3곳이다.

이렇다보니 지방에선 중개보수 개편의 실효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북지회는 지난달 30일 “전북 전주시에서 중개보수 감면 혜택을 보는 소비자는 1%에 그친다”며 “수도권 현실만 반영된 개편안”이라고 비판했다.

● 서울에서도 10채 중 3채는 감면 혜택 못 받아
서울에 거주한다고 중개보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7월까지 1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5만7132건 중 1만6005건(28%)은 6억 원 미만이었다. 이 비중은 도봉구에서는 64.1%에 이른다. 이어 △금천구(61.7%) △구로구(51.4%) △중랑구(51.2%) △노원구(51%) 등도 6억 원 미만 아파트 거래 비중이 높다. 중산층 서민이 많이 사는 동네가 중개보수 감면 혜택을 덜 받는 셈이다,.

“오히려 중개보수가 더 늘어나는 거 아닌가요.”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이런 말도 나온다. 종전 고가 주택 거래 시 중개보수는 상한요율보다 낮은 수준에서 정해졌다. 개편 이후 공인중개사들이 최대한 상한요율대로 중개보수를 요구하면 실제 수수료 부담은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괜한 우려가 아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15억 원 이상 주택 매매 시 실제 소비자가 낸 중개보수는 거래 가격의 0.5%였다. 개정안은 15억 원 이상 상한요율은 0.7%로 정했다. 현행 상한요율(0.9%)보다 0.2% 포인트 낮지만 현장에서 실제 통용되는 요율보다는 오히려 높은 셈이다.


● 치킨집보다 많은 공인중개업소
2일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지 반나절 만에 국토부 홈페이지에는 댓글 300여 개가 달렸다. 대다수가 개편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공인중개사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공인중개사들은 지금도 수입이 부진한데 중개보수까지 낮추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다수 공인중개사들은 영세 자영업자들로 요즘처럼 거래가 뜸하면 적자를 보기 십상이다. 서울 노원구 한 공인중개사는 “매물이 없어 요즘엔 한 달에 계약서 하나 쓰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 규제로 ‘먹거리’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 지난달 중개보수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임대차3법 시행 이후 갱신계약 비율이 늘면서 (공인중개사를 통한) 전월세 거래 건수가 급감했다”고 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공인중개사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중개시장이라는 ‘파이’는 부동산 시장 상황과 거래량에 따라 들쭉날쭉하지만, 이 파이를 나눠 먹을 공인중개사 숫자는 매년 꾸준히 늘다보니 제살 깎아먹기 식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국에서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는 올 6월 기준 11만7738명이다. 영세 자영업자들 간 출혈 경쟁이 심한 대표 업종으로 꼽히는 치킨집(2019년 기준 8만7000여 개)과 편의점(지난해 기준 4만3000여 개)보다 훨씬 많다.

매년 1만~2만 개 공인중개업소가 문을 닫는데도 전체 숫자가 줄지 않는 건 새로 개업하는 공인중개사들이 끊이지 않아서다. 돈을 잘 버는 유망 직종이라서보다는 취업난에 떠밀린 구직자들이 다른 전문직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인 공인중개사로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올해 10월 예정된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에는 1983년 이후 역대 가장 많은 40만8000여 명이 응시했다.


● 중개 서비스 수준 높이는 게 근본 해법
일각에선 공인중개업계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여긴다. 고가주택 1채만 중개해도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을 버는 공인중개사들이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공인중개사가 20억 원짜리 주택 매매를 중개하면 최고 18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매도인과 매수인에게 각각 1800만 원씩 받으면 3600만 원짜리 벌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극소수다. 서울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고액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초고가 주택 자체가 없는데다, 공동 중개가 일반적이라 공인중개사가 매도인과 매수인 양쪽에서 중개보수를 모두 받는 경우도 드물다.

전문가들이 이번 중개보수 개편을 두고 “급한 불만 껐다”고 평가한다. 중개보수 부담이 과도하다는 여론을 달래는 게 급급해 소비자 불만과 공인중개업계 반발이 나오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중개보수를 둘러싼 논란을 해소하려면 결국 중개보수가 아깝지 않도록 중개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 중개보수는 해외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미국 중개보수는 거래 가격의 최고 6%에 이른다. 매도인이 한 공인중개사에게만 매물을 맡기는 전속 중개가 일반적인데다, 공인중개사로부터 중개는 물론 금융, 법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만큼 소비자도 그에 걸맞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은 직거래가 대안이라는 하지만 전 재산과 다름없는 집을 사고 팔면서 모든 위험을 개인이 떠안는 방식은 보편화되기 어렵다.

김학환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중개서비스의 발전이 근본 해법”이라며 “공인중개업계는 전문적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변화하고, 정부도 제도적으로 이런 변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소비자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중개 앱, 수수료 반값에 VR로 매물 구석구석 확인… 중개사협회는 반발


최근 아파트 매입을 결심한 직장인 황모 씨(32)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본다. 예전 같으면 평일에 휴가 쓰거나 주말을 이용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앱에서 원하는 아파트 단지만 선택하면 3차원(3D) 지도로 동·호수별 평면과 조망, 실시간 채광까지 확인할 수 있다. 황 씨는 “현장을 직접 가보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웬만한 정보는 파악할 수 있다”며 “중개수수료를 할인해주는 앱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 중개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인 중개 방식에서 벗어나 ‘반값 중개수수료’를 내세우고 ‘가상현실(VR)’ 영상으로 매물을 둘러보는 등 다양한 ‘프롭테크(Prop-tech·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업체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를 환영하는 편이지만 기존 중개업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 반값 수수료에 소비자 관심 커져

부동산 중개 플랫폼인 다윈중개는 반값 수수료를 내걸고 있다. 반값 수수료 자체도 집을 구하는 사람만 내고, 집을 내놓는 사람은 수수료를 아예 내지 않는 구조다. 회사 슬로건도 ‘중개수수료 집 내놓을 때 0원, 집 구할 때 현행 요율의 절반’이다.

2019년 서울과 경기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경기 분당 판교 광교를 중심으로 현재 이용자 수가 10만 명을 넘었고 공인중개사 1000명 이상이 이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다윈중개는 “고비용 구조의 오프라인 중개를 온라인으로 바꿔주면 중개사들의 비용 구조가 개선돼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소비자들은 환영하지만 상황이 순탄치만은 않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올해 4월 다윈중개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가 공인중개사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고 불법 광고 표시행위를 했다’는 것이 고발 이유다. 종전에도 협회가 2차례 검찰에 고발한 적이 있다. 당시 모두 불기소 처분으로 기각됐다.


중개산업에서 신산업과 구산업이 대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12월 등장한 ‘트러스트’ 부동산은 현직 변호사들이 중개와 법률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며 중개수수료를 집값에 관계없이 ‘최대 99만 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중개사협회는 변호사가 중개사의 업역을 침해했다며 고발했고, 무등록 중개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이 났다.


최근에는 ‘직방’과 개업 중개사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직방이 올해 8월 ‘온택트 파트너스’라는 서비스를 출시하면서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세대 내부나 외부 전경을 VR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중개사와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해 계약까지 이뤄지는 모델이다. 현행법상 문제는 없지만, 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들의 부동산 정보와 광고비로 성장한 기업이 도리어 ‘골목상권’을 침범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중개시장 혁신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전문가들은 중개시장 혁신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 막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는 시점이어서 갈등이 부각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속도는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프롭테크 업체들이 기존 산업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은 비대면으로 중개 계약을 맺거나, 매물 정보를 VR 영상만으로 확인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동구의 한 중개업소에서 3억7000만 원에 빌라 전세 계약을 체결한 정모 씨(35)는 “수억 원에 달하는 계약을 처음 하는데 집을 방문하거나 현장 중개업소를 통하지 않고 진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프롭테크 업체들의 3D 지도나 VR 영상 서비스 등은 참고만 하고 중요한 정보는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현장 중개업소 대비 매물 수가 적고, 사업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점도 해결해야 한다. 다윈중개는 수도권에서 22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전국으로 지점을 확대하진 못했다. 직방이나 다방 등도 매물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만큼 수익 모델을 명확하게 짰다기보다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아직은 개업 중개사들의 광고비에 의존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프롭테크 업체들의 등장으로 기존 중개업계도 과거와 같은 영업 방식, 서비스 품질로는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며 “다양한 중개서비스의 등장을 거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스스로 발전할 방안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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