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누리카드로 ‘첫 연극 관람’… 새 세상 만났어요”

손효림 기자

입력 2021-09-03 03:00 수정 2021-09-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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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위, 취약계층 문화지원사업
올해 1인 10만원씩 177만명 혜택
가족과 ‘문화데이트’ 추억 만들기도


시리아 내전과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연극 ‘더 헬멧’. 아이엠컬처 제공

“눈앞에 선 배우들의 몸짓과 숨소리,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 처음 연극을 봤을 때 장면 하나하나와 소리, 감정, 냄새까지 잊을 수가 없어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났어요.”

휠체어를 타는 주모 씨(32)는 2018년 처음 연극을 본 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쌍둥이의 이야기를 그린 ‘위대한 놀이’였다. 공연에 매료된 그는 꾸준히 공연장을 찾았고 연극 ‘서편제’, 뮤지컬 ‘당신만이’ 등을 봤다. 그는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이 정말 좋다”며 “이제 공연 관람이 취미가 됐다”며 웃었다.

주 씨는 문화누리카드를 통해 티켓을 구입했다. 문화누리카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대상으로 문화생활에 쓸 수 있도록 발급하는 카드다. 2014년 도입돼 지난해까지 총 1100만 장이 발급됐다. 올해는 1인당 10만 원씩 177만 명에게 발급됐다. 책 구입, 영화·공연·전시 관람, 테마파크 이용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 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많다.

대학교 1학년인 윤모 씨(19)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뮤지컬을 보고 무대의 강렬함에 사로잡혔다. 고등학생 때도 공연이 보고 싶었지만 티켓을 사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고민하다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하자 선생님이 문화누리카드를 소개해줬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서울 대학로로 달려갔다. 그는 “2019년 시리아 내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연극 ‘더 헬멧’을 본 후 연극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학교 연극 동아리에 지원해 연출을 맡게 됐다”고 했다. 이공계로 진학하려 했던 그는 공연을 보며 문학에 관심을 갖게 돼 국문과를 선택했다. 윤 씨는 “주위 어른들이 ‘공연 볼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라’라고 했지만 국문과에 가고 싶어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추억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홀로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A 씨(33)는 문화누리카드로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는 날이 세 모자의 데이트 날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소감을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뮤지컬 배우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며 대결을 펼치는 모습에 웃음이 빵빵 터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많은 분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나누며 살자고 했어요.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원에 합격한 큰아이가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튼튼한 도구를 개발해 유엔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한 사실을 교수님에게 들었어요. 아이들이 나눔의 가치를 알게 돼 기뻤습니다.”

문화누리카드는 매년 2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발급돼 해당 연도 말까지 쓸 수 있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예술이 지닌 치유와 위로의 힘을 확인했다는 분들이 많다”며 “문화생활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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