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대리점 뺏으려 점주 괴롭혀… 배송 거부로 영업 방해”

변종국 기자

입력 2021-09-02 03:00 수정 2021-09-02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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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노조 압박에 운영권 포기하면 노조측 관계자가 해당 대리점 차지”
“미배송 물량, 점주가 배송하는데 막무가내 배송거부 버티기 어려워”
극단선택 소장도 “8월 31일 포기”
업계 “대리점 장악 시도 여러 곳, 고용부 등에 신고해도 조치 없어”


1일 경기 김포시의 한 택배 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 대리점주 이모 씨 분향소에서 한 참배객이 분향과 헌화를 하고 있다. 이 씨는 택배노조의 집단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날 터미널에는 노조원들이 배송을 거부한 택배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다. 김포=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택배 노조의 괴롭힘을 호소하며 지난달 30일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CJ대한통운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는 지난달 31일부로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 배경에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라고 한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 노조와 대리점 소장들의 갈등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노조를 중심으로 대리점 운영 포기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1일 취재에 응한 택배 대리점 소장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택배 노조의 대리점 뺏기 및 대리점 소장 길들이기 시도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리점 소장은 “택배 노조가 대리점을 장악하려는 행위까지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대리점-노조 갈등, 태업 욕설로 폭발


택배업계에서는 보통 해당 지역에서 오래 택배 일을 한 기사나 본사의 운영 입찰을 따낸 사람이 대리점 소장이 돼 운영을 맡는다. 이 씨도 경기 김포시에서 오래 배송 업무를 하다 소장이 됐다.

이 씨의 대리점은 올해 5월부터 노조가 세를 불리면서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대리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씨 대리점에 있던 노조원들은 수수료 및 대리점 운영을 문제 삼으면서 배송을 거부하고 이 씨를 향해 집단 폭언, 따돌림을 했다.

이 씨의 한 동료는 “일부 직원들이 택배 노조에 가입한 이후 노조원 일부가 ‘대리점을 빼앗아 우리가 운영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노조원과 갈등 끝에 이 씨는 지난달 초 대리점 운영 포기 의사를 밝혔고, CJ대한통운이 이 지역을 분구(담당구역 분할)하려 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이 씨는 유서에 “대리점 분구를 진행하다 의견차로 결렬됐다. 그들의 선택은 노조였다. 노조에 가입하면 소장을 무너뜨리고 대리점을 흡수해 파멸시킬 수 있다며 압박해 왔다”고 적었다.

동료 기사들과 주변 대리점 소장들은 이 씨가 택배 노조의 대리점 장악 시도를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증언했다. 이 대리점에서 노조원들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 “무게가 많이 나간다” “규정에 어긋나는 식품이다” 등의 이유를 대며 배송을 거부한 사례가 많았다. 수십, 수백 개의 물량은 대부분 대리점 소장과 가족들이 배송했다.

노조원들이 비노조 택배 기사들을 괴롭혔다는 증언도 있다. 김포의 한 택배 기사는 “비노조원들 중 일부는 노조의 괴롭힘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직장에서 마주할 때마다 어떤 시비를 걸지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자신이 당한 욕설과 폭언 장면이 찍힌 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이날 빈소에는 이준석 대표, 하태경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국민의힘 인사들이 조문했다. 한 참석자는 이 대표가 조문 후 “이런 일은 막아야 한다”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제대로 알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 “막무가내식 파업에 대리점 뺏기도 곳곳에서”

대리점 뺏기 시도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택배 노조의 공격에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전북, 인천 등에서 대리점 영업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고 대리점 소장들은 말했다. 실제 대리점 운영을 포기했다고 밝힌 A 씨는 “일부 노조원들은 막무가내로 배송을 거부하고 가족, 지인들까지 힘들게 한다. 결국 내가 포기한 대리점의 새 소장 자리는 노조 측 관계자가 꿰찼다”고 말했다.

택배 노조와 대리점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이렇다 할 시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전국택배대리점연합 관계자는 “오랜 기간 꾸려온 대리점을 빼앗아 가려는 게 현실인데 고용노동부, 경찰에 신고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 호소할 곳도, 구제받을 곳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택배 노조 측은 본보 취재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유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장례가 끝나는 대로 추후 대응을 논의할 예정이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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