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조, 대리점 뺏기-점주 길들이기 시도”…분구 둘러싼 갈등 폭발

변종국 기자

입력 2021-09-01 19:06 수정 2021-09-0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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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김포A터미널에 마련된 김포장기대리점장 고(故) 이모씨(40)의 추모 분향소에 조화가 늘어서 있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 뉴스1

택배 노조의 괴롭힘을 호소하며 지난달 30일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CJ대한통운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는 지난달 31일부로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 배경에도 대리점 운영을 포기하라고 요구한 노조의 무리한 요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 노조와 대리점주 갈등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노조를 중심으로 대리점 운영 포기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1일 이번 사건 취재에 응한 택배 대리점 점주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택배 노조의 대리점 뺏기 및 대리점주 길들이기 시도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리점 소장은 “일부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택배 대리점을 빼앗겠다며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택배노조가 대리점을 장악하려는 행위까지도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분구 둘러싼 갈등, 태업-욕설로 폭발
업계 관계자들은 대리점 뺏기, 대리점주 길들이기 등이 벌어지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택배 대리점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택배 업계에서는 보통 해당 지역에서 오래 택배 일을 한 기사나 본사의 운영 입찰을 따낸 사람이 대리점 소장이 돼 운영을 맡는다. 이 씨는 경기 김포시에서 오래 배송 업무를 하다 소장이 됐다.

이 씨 대리점은 올해 5월부터 노조가 세를 불리면서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대리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씨 대리점에 있던 노조원들은 수수료 및 대리점 운영상 문제를 삼으면서 배송을 거부하고 이 씨를 향해 집단 폭언, 따돌림을 했다.

이 씨의 한 동료는 “노조원들이 공공연하게 ‘대리점을 빼앗아 우리가 운영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 씨가 노조원들에게 담당구역 일부를 떼 주려 했지만 노조원들은 대리점을 통째로 빼앗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지난달 초 대리점 운영 포기 의사를 밝히고 CJ대한통운이 이 지역을 분구하려 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이 씨는 유서에 “대리점 분구를 진행하다 의견 차이로 결렬됐다. 그들의 선택은 노조였다. 노조에 가입하면 소장을 무너뜨리고 대리점을 흡수해 파멸시킬 수 있다며 압박해왔다”고 적었다.

동료 기사들과 주변 대리점주들은 이 씨가 택배노조의 대리점을 장악 시도를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증언했다. 이 대리점에서 노조원들은 “규격에 맞지 않는 상품이다”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 “규정에 어긋난 신선식품이다” 등의 이유를 대며 배송을 거부한 사례가 많았다. 이 물량은 대부분 대리점 소장과 가족들이 배송했다.

노조원들이 비노조 택배 기사들을 괴롭혔다는 증언도 있다. 김포의 한 택배 기사는 “비노조원들 중 일부는 노조의 괴롭힘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직장에서 마주할 때마다 어떤 시비를 걸지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자신이 당한 욕설과 폭언 장면이 찍힌 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 “막무가내식 파업에 대리점 뺏기도 곳곳에서”
대리점 뺏기 시도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택배노조 공격에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전북, 인천 등에서 대리점 영업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고 대리점 점주들은 말했다. 실제 대리점 운영을 포기했다고 밝힌 B씨는 “일부 노조원들은 막무가내로 배송 거부를 하고 가족, 지인들까지 힘들게 한다. 결국 내가 포기한 대리점의 새 소장은 노조 측 관계자가 꿰찼다”고 말했다.

택배노조와 대리점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이렇다할 시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전국택배대리점연합 관계자는 “오랜 기간 꾸려 온 대리점을 빼앗아 가려는 시도가 현실인데 고용노동부, 경찰에 신고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 호소할 곳도, 구제받을 곳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CJ대한통운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아직 장례 중이고 경찰 수사가 의뢰돼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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