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징계취소 판결에… 금감원 ‘CEO 제재’ 정당성 흔들

김자현 기자

입력 2021-08-30 03:00 수정 2021-08-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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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CEO에 책임 물었지만 반전
법원 “내부규정상 준수 의무일 뿐 임직원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어”
라임-옵티머스 등 징계에도 영향… 금감원은 항소 나설 가능성 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중징계 취소 소송 1심에서 금융감독원이 패소하면서 금융당국의 징계 적법성이 흔들리고 있다.

징계 근거가 부실한데도 무리하게 중징계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금감원이 비슷한 이유로 다른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내린 제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 체제에서 금융감독의 기조가 바뀔지도 주목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 회장을 비롯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및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로 금감원에서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전·현직 금융사 CEO는 10여 명에 이른다.

그동안 금감원은 금융사들이 DLF와 사모펀드 등을 불완전 판매했고 경영진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게 원인이 된다며 CEO를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내부통제 부실을 이유로 경영진까지 제재하는 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행정법원이 27일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가 아닌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감원이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손 회장의 소송은 각종 사모펀드 관련 징계를 받은 금융사 CEO 중 첫 번째 불복 사례였다. 이에 따라 비슷한 근거로 처분을 받은 다른 금융사 CEO들의 중징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DLF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과 마찬가지로 문책경고를 받은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당시 하나은행장)이 금감원과 징계 취소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공판 절차가 마무리되고 연내 1심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의 중징계를 받은 CEO들의 최종 제재 결론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가 예고된 경영진은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이상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이상 문책경고) 등이다. 지성규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당시 은행장)은 하나은행이 판매한 사모펀드와 관련해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받은 상태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CEO들의 징계를 결정하고 있지만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1년 가까이 징계 확정을 미루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손 회장 1심 판결을 지켜본 후 확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1심이긴 하지만 금감원은 이번 패소로 윤석헌 전 금감원장 시절 강력하게 추진했던 징계 정당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지난달 금감원은 감사원으로부터 사모펀드 손실 사태와 관련해 상시감시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금감원은 27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추후 항소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우리금융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우리금융에 잘못이 없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 만큼 소명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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